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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철폐로 가격경쟁력 ‘쑥’ … 승용차•냉장고•PDP 등 한국산 1위 제품 수두룩 1980년대 중반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의 칠레 판매법인이 문을 닫았다. 경기침체로 인한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한 결과였다. 당시 현대차의 포니는 칠레 택시시장을 석권한 베스트셀러 차였다. 나는 현대차의 기술력과 미래를 믿고 과감히 현대차 판매법인을 인수했다. 2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지금도 당시의 판단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칠레의 대표 기업 길데마이스터사(社)의 리카르도 레스만 회장이 현대차와 손잡은 것은 1986년이다. 칠레 경제가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고, 현대차는 판매법인의 부도로 칠레를 떠날 준비를 하던 때였다. 오로지 현대차의 기술력만 믿고 감행했던 현대차 판매사업은 올해로 23년째를 맞았다. 한-칠레 상공회의소 회장이기도 한 리카르도 회장의 한국 사랑은 끔찍할 정도다. 그의 집무실 중앙에는 현대차에서 선물 받은 태극기와 거북선이 진열돼 있다. 리카르도 회장은 이 선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500년 전 거북선을 만든 한국 사람들의 기술력과 의지가 지금의 현대차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현대차에 대한 믿음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한국산 자동차 점유율 29.3%로 일본 압도 현대차는 칠레 승용차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트럭을 앞세운 GM에 밀려 전체 판매량에서는 2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승용차시장만큼은 내주지 않고 있다. 37개에 이르는 글로벌 브랜드가 350여 개 모델을 판매하는 세계 자동차시장의 각축장인 칠레에서 1위에 오른 것은 기적에 가깝다. 현대차가 칠레 자동차시장에서 도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04년 체결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있다. 6% 관세가 철폐되면서 가격경쟁력을 갖춘 한국산 자동차의 판매에 불이 붙은 것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FTA 체결 전인 2003년 18.8%에 불과하던 칠레에서의 한국산 자동차 점유율은 2007년 말 현재 29.3%로 증가하면서 일본(25.2%)을 압도했다. 자동차산업이 한-칠레 FTA 체결의 최대 수혜 분야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리카르도 회장도 현대차의 성공 비결에 대해 “현대차의 기술력과 길데마이스터사의 애프터서비스, 그리고 FTA가 가져온 선물”이라고 말한다. 리카르도 회장의 말이다. “20년 넘게 현대차를 수입해 팔면서 현대차의 기술 발전을 옆에서 지켜봤다. 짧은 기간에 놀라운 기술력을 갖추게 된 것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현대차는 칠레에서 대통령과 정부관료들의 의전차량으로도 쓰일 만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온 어떤 자동차보다도 품질이 우수하다고 자신한다. FTA가 가져온 변화는 생각보다 컸다.” 한-칠레 FTA 체결은 한국 가전제품의 판매에도 불을 붙였다. 현재 칠레 가전시장은 한국 기업이 장악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칠레에는 삼성, LG, 대우 등 국내 백색가전 3사가 모두 진출해 사실상 국내 기업끼리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삼성의 경우 연간 3억 달러가량의 백색가전을 칠레에 판매하면서 일본 소니와 업계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LG와 대우는 근소한 차이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한-칠레 교역량 2003년 16억 달러서 지난해 70억 달러로 칠레에서 한국 가전제품은 ‘품질 좋은 고가제품’으로 대접받는다. 2004년 FTA 발효에 맞춰 칠레 산티아고 지점을 법인으로 승격시킨 삼성은 ‘칠레 시장 1위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시장 공략에 나선 지 오래다. 그 결과 현재 삼성은 TV, 캠코더, DVD,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에서 칠레 가전시장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06년 한 해에만 매출이 40%나 증가해 2억5000만 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3억 달러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LG 역시 2003년 법인 설립 이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04년 8000억 달러 수준이던 매출액은 2006년 1억6000만 달러로 2년 만에 2배가 늘었고, 지난해에는 1억9000만 달러를 기록해 2억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LG는 세탁기, PDP TV, 광스토리지, DVD 플레이어, 양문형 냉장고 등 주요 가전제품 분야에서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백색가전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에도 FTA는 일등공신으로 작용했다. FTA 타결 이전만 해도 칠레에 수출되는 한국 가전제품에는 6%의 관세가 붙었고, 이는 고스란히 유통업자의 부담이 되면서 칠레와 이미 FTA를 맺고 있던 미국, 멕시코의 제품들에 비해 가격경쟁력에서 밀렸다. 하지만 FTA가 발효되면서 모든 걱정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한국 가전제품들은 빠르게 칠레 시장을 장악해나갔다. 하지만 이런 성과가 하루 이틀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기업들의 살을 깎는 고통의 대가로 얻어진 결과다. 칠레 현지에서 만난 대우일렉트로닉스의 한 관계자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가전제품은 미국 일본 멕시코 제품에 밀려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한국을 중국의 변방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영업을 한다는 것이 무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10년 넘게 품질로만 승부하면서 이러한 상황을 극복했다. 이젠 칠레 국민도 전 세계 어느 나라 가전제품보다 한국 제품의 품질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FTA 체결 이후 한국과 칠레 간 교역량은 급증했다. FTA 체결 전인 2003년 한국과 칠레의 교역량은 16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FTA 발효 3년 만인 2007년에는 70억 달러로 증가했다. 교역량이 매년 100%를 넘은 셈이다. 이로써 한국은 칠레의 다섯 번째 교역 상대국이 됐고, 칠레 역시 한국의 17번째 교역 국가로 성장했다. 칠레, 중국•일본과도 FTA … 한국 기업들 위협 한-칠레 FTA 4년을 맞아 정부부처와 관련 기관들은 앞 다퉈 한-칠레 FTA 평가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성공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3월3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한-칠레 FTA 발효 4주년 경제교류 현황’은 한-칠레 FTA에 대해 “무역창출 효과로 수출이 크게 증가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지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칠레 FTA 발효 이후 2007년에 무역수지가 처음으로 개선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우리나라의 대(對)칠레 수출은 96.5% 늘어난 반면, 수입은 4% 증가에 그쳐 무역적자는 8억4800만 달러에 불과했다. FTA 3년차인 2006년의 경우 무역적자는 22억7100만 달러였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도 비슷한 평가를 내린다. 3월28일 나온 KOTRA 보고서는 제목부터가 ‘네 돌 맞은 한-칠레 FTA, 아직은 순항 중’이다. 보고서는 그 이유로 △칠레로의 수출 증가 △칠레 시장 점유율 증가 △칠레로의 수출품목 다양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KOTRA는 칠레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자동차시장과 가전시장에 주목했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이 3월에 낸 ‘한-칠레 FTA 발효 4년 수출입 동향분석’이라는 제목의 자료도 FTA를 맺은 이후 가장 큰 수혜를 받은 한국의 산업은 자동차와 가전이라고 밝혀 역시 눈길을 끌었다. 물론 FTA 체결 당시 많은 기업들은 인구 1700만명에 불과한 칠레의 구매력을 의심하며 FTA 효과에 부정적인 시각을 내놨다. 그러나 한국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칠레에서 업계 1위를 차지하는 등 선전하자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4년 만에 칠레 시장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광고문구가 ‘Made in Korea’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제품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KOTRA 보고서에 따르면 한-칠레 FTA 발효 4년간의 교역변화 현황을 분석한 결과 자동차, 전자제품, 기계류 등을 중심으로 대(對)칠레 수출이 급증했다. 최근에는 의약품, 유기화학물 등으로 수출품목이 다양화되는 추세다. 한-칠레 FTA로 세계 최대 구리자원 보유국인 칠레를 안정적인 공급처로 확보했다는 점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구리는 아직까지도 대(對)칠레 교역적자의 가장 큰 원인이다. 하지만 최근 칠레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칠레가 중국 일본 등과 속속 FTA를 맺기 시작하면서 한국 제품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저가공세를 시작한 중국의 가전제품과 브랜드를 앞세운 일본의 자동차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중국의 가전기업들은 1~2년 만에 시장점유율을 2배 이상 확대하며 한국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대다수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어지간한 외국 기업의 공세는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한국 기업과 상품이 칠레 시장에서 신뢰도를 쌓아왔다는 분석에서다. 삼성전자 칠레법인 홍성직 법인장은 최근 상황을 위기로 보는 시각을 일축한다. “한국 제품들은 오랜 기간 칠레 국민에게 신뢰를 받으며 좋은 품질에 대한 믿음을 쌓아왔다. 저가의 중국 제품들이 밀려오고 있지만 쉽게 시장을 내주진 않을 것이다. 고품질의 다양한 제품 도입과 애프터서비스 강화 등을 통해 브랜드 가치에 대한 신뢰도를 이어나간다면 어떤 경우에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한다.” (끝) 산티아고=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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