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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포퓰리즘]<중>베네수엘라 [동아일보 2007-01-08 03:00:00] [동아일보] 《“차베스 대통령이 인기 관리에만 신경 쓰는 한 베네수엘라의 미래는 정말 캄캄합니다(No veo el futuro·노 베오 엘 푸투로).”(안드레센테 디 카라카스·야당 관계자)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향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그의 반대자들은 그의 집권 이후 국민들의 편 가르기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고 우려했다. 반면 지지자들은 그가 빈부 격차로 상징되는 고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안드레스 몰리나(국립중앙대 정치학과 학생) 씨는 “그는 기득권층의 도전에 응전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 차베스 대통령의 전방위 통제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험구를 늘어놓으며 반미동맹을 꾀해온 차베스 대통령은 중남미 안에서도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인근 중남미 국가의 지식인들도 그를 특이한 인물로 평가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칠레 경제학자인 마르타 라고스 씨는 지난해 8월 주간지 에포카 기고문에서 “차베스 대통령을 좌·우파로 구분하기보다는 기존 시스템을 파괴하는 반체제(anti-system) 지도자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그의 포퓰리즘적 정책 집행이 일부 수혜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데다 제대로 이행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 지난해 12월 16일 아베니다리베르다도르(자유의 거리) 아테네오 카라카스 빌딩 앞에서 열린 야당 정치집회. 도밍고 구스만(65) 씨는 “차베스는 집을 지어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이가 바로 포퓰리스트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간 20만 채의 집을 지어주겠다는 약속은 20% 정도만 이뤄진 상태에서 멈췄다. 차베스 대통령은 인위적 가격통제로 국내 경제 왜곡이 심화되는데도 자신의 대외적 입지를 높이기 위해 석유 이익금을 무분별하게 해외로 지원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2000년 이래 국제시세의 절반가격으로 쿠바에 원유를 지원하기 위해 매년 22억 달러를 부담한다. 또 좌파 연대를 위해 우유 도입을 명분으로 아르헨티나의 외채 30억 달러를 매입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원하거나 지원을 약속한 금액이 2003년 이래 무려 300억 달러에 이른다. 친 차베스 성향인 엘라디오 에르난데스(정치학) 국립중앙대 교수는 “석유와 우유를 교환한 것이지 외채를 갚아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에서 값비싼 우유를 저렴한 석유와 바꾼 게 뭐가 잘못됐느냐는 것이다. 이런 통 큰 씀씀이의 바탕은 고유가 덕분이다. 2005년의 337억8000만 달러에 이른 무역흑자도 고유가가 가져다 준 ‘굴러온 복’이다. 현지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베네수엘라 수출의 80%와 정부 수입의 65%를 석유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 차베스를 향한 기대와 우려 국민의 10%가 대를 이은 상속 재산으로 부를 독차지하고 나머지 90%는 가난하게 사는 나라. 2003년에만 해도 월임금 250달러 미만의 저소득층이 전체 임금소득자의 83%에 이르렀던 곳.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환경이었던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대통령 같은 포퓰리스트의 등장은 필연적이었을 법하다. 에르난데스 교수는 “그는 포퓰리스트가 아니라 ‘인기 있는(popular)’ 지도자”라며 그의 집권 이후 시민들이 훨씬 많은 분야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됐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차베스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을 반대하는 야당조차 이런 특수한 역사와 사회환경을 외면하지 못한다. 이번 대선에서 마누엘 로살레스 야당 후보는 ‘미 네그라(Mi Negra·나의 블랙 레이디)’라는 이름의 직불카드를 빈곤층에 나눠주겠다고 공약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당장 “당신이 포퓰리스트”라고 공격했다. 중남미에선 좌파 우파 구분 없이 포퓰리즘 정책을 펴고픈 유혹이 상존하는 현실이 엄존한다. 문제는 그 이후다.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한 차베스 대통령의 정책이 기득권 세력을 다른 한편으로 밀어 내면서 정반대의 분열이 발생했다. 정치집회에 참가한 카라카스 씨는 “빈곤층을 돌보지 않았던 우리의 경험을 되살린다면 차베스도 나라를 한쪽 방향으로만 끌고 갈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래도 차베스 대통령은 한발 더 나갔다. 그는 대선에서 승리한 뒤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애겠다는 구상을 나타냈다. 그의 공공연한 장기집권 의지는 자연히 정치문화를 경직시키고 공포정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카라카스 시내에서 만난 노점상들의 얘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아베니다리베르다도르의 옛 국립예술박물관 자리에서 노점상을 하는 A 씨는 ‘차베스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주변을 살피기만 했다. 보다 젊은 다른 노점상 B 씨도 기자가 비싼 장신구를 산 뒤에야 주변을 살피며 겨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차베스 당선 이후 사람들이 미래를 우려하면서 돈을 안 쓴다”고 털어놨다. 그는 “위험하기 때문에 내 이름은 알려줄 수 없다”며 서둘러 말문을 닫았다. 차베스 대통령을 옹호하는 이들만 흔쾌하게 이름을 밝혔다. 전기기술자이면서 주말에는 노점에 나서는 라파엘 다빌라(55) 씨는 “정부가 2003년까지 쿠데타와 총파업에 시달리다보니 공약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며 차베스 대통령에게 뜨거운 신뢰와 지지를 보냈다. 과거 기득권층의 횡포와 이익 챙기기에 넌더리를 내온 차베스 대통령의 지지자들, “차베스는 실업자와 길거리 꼬마들에게까지 수없이 많은 약속을 해왔다”고 말하는 반대파들. 포퓰리즘의 부작용으로 인해 극심한 분열과 대립으로 치닫는 베네수엘라 내부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친 차베스 성향의 지식인들마저 차베스 정권의 최우선 과제로 ‘사회적 통합’을 꼽을 정도다. 카라카스=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 차베스 통치 스타일 국제무대의 ‘이단아’로 불리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독특한 행보는 국가의 조직과 제도를 무시하는 별도 시스템 운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파견대(Mission·미션)’ 사업이라고 불리는 12개 분야의 빈민 지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교육부나 보건부 같은 정부 조직과 별도로 움직인다. 차베스 대통령이 대중과의 직접 접촉용으로 개발한 조직인 셈이다. 특히 2003년부터 고유가 시대가 시작된 뒤 거액의 오일달러를 이곳에 지출함으로써 이 조직들은 전국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은 쿠바 의사로 구성된 의료파견대 ‘빈민촌 미션’. 빈민촌 미션은 차베스 대통령의 표밭인 베네수엘라의 도시 빈민층 증가와도 직접 관련이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불법 판자촌에 병원을 만들고 거주자들을 유권자로 등록해 이들을 지지자로 만들었다. 2003년 초 8000여 명에 불과하던 쿠바 의사로 시작된 이 사업에는 2만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로빈슨 미션’은 문맹 퇴치 사업단이다. 1961년 쿠바 혁명의 초기 사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사업을 통해 차베스 대통령은 우선 100만 명을 대상으로 읽기와 산술 교육에 나섰다. 학업 포기자 가운데 교육을 계속 받기를 희망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리바스 미션’에는 2004년에만 60만 명이 등록했다. 이 밖에도 주민들을 선거인 명부에 등록시킨다는 ‘신원 미션’, 대학 진학 교육 프로그램인 ‘수크레 미션’, 실업자 취업훈련 프로그램인 부엘반 ‘카라스 미션’도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업은 일부 수혜자에게만 혜택을 주고 기득권 세력을 정치 과정에서 배제시켜 사회 내 갈등의 골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따른다. 빈민구제 사업에 ‘파견대’라는 뜻의 미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포퓰리즘 정책이 신격화 수준까지 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카라카스의 한 외국계 기업인은 “차베스 대통령의 미션 사업을 통해 못사는 사람들이 지지층으로 변신했고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카라카스=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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