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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의 마지막 붉은 별…역사가 된 피델 카스트로 2016/11/26 쿠바 혁명 이후 피델 카스트로는 공산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국과 대립하는 동시에 외국의 좌파 혁명을 지원했다. 특히 미국의 숱한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고 군사적 대결에서도 승리를 거두면서 미국에 대항하는 공산주의 세계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이후 55년 만에 미국과 국교를 재수립한 쿠바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지는지에 따라 카스트로의 혁명에 대한 평가도 좌우될 전망이다. ◇ 혁명, 공산주의, 냉전…시대의 아이콘 된 '사령관' 카스트로는 1959년부터 1976년까지 쿠바의 총리를 지내고 1965년 쿠바 공산당 제1서기에 올랐다. 1976년부터는 국가평의회 의장을 맡았다. 쿠바 혁명이 처음부터 사회주의 이상 세계를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다. 카스트로는 훗날 "나는 1952년에 이미 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다"면서도 "우리의 혁명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의 대기실이었다"고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1902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이래 쿠바의 경제를 좌우해 온 미국 자본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쿠바의 새 정권은 필연적으로 미국과 충돌했고, 카스트로는 1961년 "쿠바의 혁명은 사회주의적"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1960년 쿠바 내 미국 정유회사, 제당 공장, 전기회사, 전화회사 등을 국유화했고 이듬해 1월 미국이 쿠바와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대사관을 폐쇄하면서 미국과 쿠바는 앞으로 반세기 넘게 이어질 대립을 시작했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쿠바의 최고 지도자로 재임하는 동안 10명의 미국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미주 대륙의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를 이끌었다. 신화통신은 최근 그가 47년간 권좌에 있던 카스트로 전 의장은 637회의 암살 공모와 164회의 실제 암살 시도를 딛고 살아남았다고 전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쿠바가 미국과의 관계를 단절한 뒤 구소련과 동맹관계를 맺은 1960년 이후 8차례에 걸쳐 카스트로 전 의장에 대한 암살을 기획했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올림픽에 암살에서 살아남기 종목이 있다면 내가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961년 4월 미국의 피그만 침공을 격퇴해 군사적 승리를 얻어내고 1962년 10월엔 쿠바에 공격용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는 소련과 미국의 극한 대립 속에서 미국의 불가침 약속까지 얻어내면서 외교적 승리를 챙기는 면모도 보였다.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카스트로 전 의장은 총리, 서기, 의장 등 행정적 직함 외에 군사 혁명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한 '사령관'(El Comandante)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 턱밑에서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와중에도 아프리카와 중남미 각국의 좌파 혁명을 지원할 군대를 파견하며 국제적 지도자로서의 위상도 확보했다. 현재 중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좌파 게릴라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은 콜롬비아에서의 쿠바식 혁명을 주창하며 1964년 창설되는 등 카스트로의 쿠바는 중남미 여러 나라의 오랜 내전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숱한 암살 시도를 버텨낸 카스트로 전 의장도 인간이면 피할 수 없는 고령으로 죽음을 맞았다. 카스트로 전 의장은 90번째 생일을 넉 달 앞뒀던 지난 4월 제7차 쿠바공산당 전당대회 폐회식에 참석 "나는 곧 90세가 되며 다른 이들과 같아질 것이다. 누구에게나 차례가 온다"며 죽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무상의료와 무상교육…혁명 여정의 끝은 카스트로 전 의장은 건강 문제로 2006년 친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의장직을 넘기고 2008년 2월 공식 직위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점차 건강이 악화한 카스트로는 지난해 7월 이후 9개월 간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다가 지난 4월 초 아바나의 한 학교를 방문한 모습이 쿠바 TV에 방영됐다. 그러나 지난 3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쿠바 방문 직후에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미국의 선물은 필요 없다"는 글을 기고해 현안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오늘날 쿠바의 모습을 조형했고 아무런 공식적 직함 없이도 기관지에 정기적으로 글을 실으며 현실적 권력을 유지했던 카스트로 전 의장의 사망은 쿠바의 앞날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으로 상징되던 쿠바의 사회주의 체제는 이미 지난 3월 미국과 국교 재수립이라는 도전을 맞은 상황이다. 카스트로 전 의장이 등장해 죽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며 쿠바공산당 간부들을 실제로 울렸던 지난 4월 전당대회는 그의 영향력이 마지막으로 행사된 공식적 자리였다. 여기서 쿠바공산당은 "국가 자산을 비롯해 교육, 보건, 안전 등과 같은 사회 서비스의 사유화를 촉진하는 신자유주의 공식은 쿠바 사회주의에 절대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식 자본주의가 무난하게 침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또 올해 85세인 동생 라울 카스트로 현 의장은 2018년까지 쿠바를 이끌기로 돼 있어 쿠바에 혁명을 가져왔던 카스트로 가문의 지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카스트로 전 의장 생전부터 민간 식당, 택시, 미용실 등 소규모 자영업 경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던 쿠바가 인제 와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과 국교를 회복하기 전 쿠바 정부의 논리 중 하나는 "국교 재수립 또한 쿠바 혁명 여정의 일부"라는 것이었다.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결과 협상을 통해 국가 대 국가 관계를 쟁취했다는 것이다. 반세기 넘는 미국과의 대립, 1990년대 냉전 종식 이후 이어진 고립을 거쳐 다시 출발선에 선 쿠바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지는지에 따라 카스트로 혁명의 성과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보고타=연합뉴스) 김지헌 특파원 = jk@yna.co.kr 106.247.8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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