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처럼 사업하라"…하경서 엘살바도로 한인회장
송고시간 | 2017/09/27 14:47
연매출 3천500억 카이사그룹 총수…"쿠바·북한 진출이 목표"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중앙아메리카 중부 태평양 연안에 있는 엘살바도르는 경상남북도를 합한 크기의 땅에 인구는 600만 명이다. 한상(韓商) 하경서(55) 카이사 그룹 회장은 이 작은 나라에서 연간 3천500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주업종인 섬유를 비롯해 포장, 커피, 마리나 등에서 25개 계열사를 둔 카이사는 엘살바도르를 근거로 과테말라, 니카라과, 온도라스, 미국, 베트남 호찌민 등에 진출해 있다.
전체 수출액 가운데 섬유가 40%를 차지하는 엘살바도르에서 하 회장은 '수출 역군'이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그를 '아미고 노블레'(귀중한 친구)로 부른다고 한다. 하 회장은 지난해 현지 국회의원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해 주는 '아미고 노블레상'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받았다.
1년 10개월 전 호찌민에 봉제 공장 1개와 포장회사 2개를 설립해 최근에는 그곳에 상주하다시피 한다는 하 회장은 27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개막한 재외동포재단 주최의 '2017 세계한인회장대회' 참가차 잠시 고국을 찾았다. 그는 350여 명이 거주하는 엘살바도르의 한인회장을 6년째 맡고 있다.
호텔 2층에서 기자와 만난 하 회장은 "저는 기회만 있으면 어디에든, 어떤 사업이든 막 투자한다"는 장난섞인 말투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사업은 움직이면서 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인은 '노마드'(유목민)처럼 되어야 하죠. 적극적으로 사업아이템을 발굴해 투자하다 보면 노하우가 쌓이게 됩니다. 5년 정도 하다 보면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게 되고, 10년이 넘으면 비즈니스 도사가 되는 것이죠. 미국에서 20년, 중미에서 20년 사업을 하다 보니 베트남 사업은 아주 쉬워지더라고요."
그는 사업을 태권도에 비유해 설명했다. 미국과 중미에서 이미 사업에서 '검은 띠'를 땄지만, 베트남에서는 '흰 띠'를 매고 초보처럼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검은 띠'를 따면 분위기가 비슷한 라오스,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로 또 진출한다는 전략. 바로 '노마드'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자꾸 움직여라. 그러면 뭐라도 하나 먹을 수 있다. 움직이는 사람은 살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죽는다"라는 말을 청년들에게 틈날 때마다 전해주고 있다고 했다.
그의 이런 사업 스타일은 성장환경과 관련이 있다. 10세 때 봉제일을 하는 어머니를 따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이주했고, 모친 일감을 거들며 재봉기술을 배웠다. 대학 졸업 후 어머니 사업을 이은 그는 원단 샘플을 들고 중남미 상공회의소를 돌며 사업 기반을 쌓았다.
1994년 내전이 끝난 지 2년밖에 안 된 엘살바도르는 그에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사업가가 치안이 안 좋은 나라에 투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모험이겠지만 그는 기회로 봤다. 그의 '촉'은 딱 맞아 떨어졌고, 봉제산업의 자동화를 통해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현재 카이사 그룹에는 6천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그는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어 현지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혼모, 고아 등을 위해 기부하고, 미성년 미혼모에게 직업 교육과 장학금을 제공하는 '가로보'(GARROBO·도마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16개 보육원에 기금을 후원하고 있다.
'엘살바도르에 우리 청년들이 진출할 기회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현지 청년들이 미국에서 공부하다가도 사업을 하기 위해 귀국한다. 그만큼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엘살바도르뿐만 아니라 중미든, 어디든 움직이기만 하면 기회는 따라온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북한과 쿠바에서 사업하는 것이다. 쿠바는 이미 빗장이 열렸고, 북한은 핵실험 등으로 위험지역이지만 앞으로 문이 열리면 이 두 지역이 가장 활발하게 사업할 수 있는 곳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2012년부터 엘살바도르 한인회를 이끌고 있으며, 중미·카리브해 한인회총연합회 초대 회장도 맡아 활동했다. 이런 공로로 '제9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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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09/27 14:47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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