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후이량위 중국 부총리가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했다. 양국이 추진해온 석유생산 합작회사의 설립 조인식에서다.
합작회사는 베네수엘라 최대 유전지대인 오리노코의 '주닌-4'에서 석유를 생산,하루 40만배럴급 중국 정유공장에 공급한다.
베네수엘라의 석유개발권 환수를 둘러싸고 엑슨모빌 등 서구 메이저들과 한판 붙었던 차베스가 중국에는 따끈따끈한 석유를 선물로 내민 것이다.
이는 지난 해 중국이 내놓은 막대한 개발기금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다.
올해 부활절 때 엑슨모빌의 모형 '화형식'까지 감행하며 격앙됐던 카라카스 시내는 이날 평온하기만 했다.
독일과 러시아는 총연장 1200km로 세계 최장 해저가스 파이프라인이 될 '노드스트림' (독일 그라이프스발트~러시아 비보르크) 계획을 가시화하고 있다. 러시아산 가스를 나눠 쓰는 유럽 국가들은 독일의 가스 독식을 우려하며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다.
독일에 우호적이던 발트해 인근 국가들은 파이프라인이 지나갈 지역의 지반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반발했고,러시아 동맹국인 벨로루시는 가스 중계요금을 대폭 인상하겠다고 위협했다.
폴란드의 알렉산더 크바시니에프스키 전 대통령은 노드스트림 계획을 1940년 독일과 러시아가 맺은 독ㆍ소불가침조약에 비유하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각국의 각축전이 점입가경이다.
70여년 전 독일과 소련의 밀약이 2차 세계대전의 씨앗이 됐다면,노드스트림 계획을 포함한 각국의 합종연횡은 21세기 새로운 '검은 냉전'의 신호탄이 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자원전쟁을 유발하는 곳은 초고속 경제성장으로 에너지에 굶주린 중국이다. 중국은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유전과 자원을 사들이는 데 금액을 불문하고 풀베팅하는 '자원의 블랙홀'이다.
2006년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의 아프리카 순방을 시작으로 시동을 건 중국 자원외교는 이미 제3세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중국의 부채탕감 정책에 따라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 중국 부채는 이미 99%가 탕감됐다.
2006년 세계 7대 석유메이저로 부상한 중국 최대 국영석유회사 CNPC는 중동과 중앙아시아 등 세계 27개국의 유전과 가스전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시노펙은 지난해 말 이란의 야다바란 유전개발에 2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혀 이란에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는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앞세우는 미국과 유럽조차 자원전쟁 현장에서는 체면도, 인권도자국 내 정치적 논쟁도 철저히 무시한다.
중국의 확장을 의식한 미국은 카자흐스탄 등 카스피해 연안 산유국과의 유대 관계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05년 5월 미국의 에너지부 장관은 부정선거로 독재 논란을 빚었던 아제르바이잔을 직접 방문해 국제사회의 빈축을 샀다.
아제르바이잔~터키 구간 BTC 파이프라인 완공식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이 파이프라인은 껄끄러운 러시아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국이 지지하는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이곳 송유관 건설을 둘러싼 소위 '신(新) 거대게임'은 오로지 실리만을 좇는 자원전쟁의 대표적 사례다.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 인도양으로 진출하다 대영 제국과 충돌했던 '거대게임'의 21세기 버전으로 불린다. 유럽은 러시아에 대한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아제르바이잔 등 카스피해 연안으로부터 가스를 들여오는 나부코 가스관을 2012년에 완공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 가즈프롬은 이탈리아 ENI와 함께 러시아에서 남유럽으로 가는 '사우스스트림' 프로젝트를 내놓고 맞불을 질렀다.
일본도 공적개발원조(ODA)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자원외교에 힘을 쏟고 있다. 미쓰비시와 미쓰이물산은 가즈프롬이 주도하는 러시아 '사할린-2' 유전에 지분을 출자해 내년부터 연간 750만배럴의 원유를 확보할 계획이다.
21세기를 달구고 있는 자원전쟁이 어떤 시나리오로 펼쳐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자원은 유한하다는 것. 그리고 이를 선점하기 위한 자원전쟁 선전포고가 이미 상대국가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경제 ◆특별취재팀/알마티ㆍ아스타나(카자흐스탄)ㆍ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오형규생활경제부장(팀장),현승윤차장,박수진,이정호,장창민,이태훈,김유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