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실시된 카리브해의 도미니카 공화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레오넬 페르난데스 후보(54)는 청소년기를 미국 뉴욕에서 보낸 사실이 이력에 따라다닌다.
페르난데스가 2기 대통령 임기중에 카리브해 지역 국가들 가운데 최초로 시작한 수도 산토 도밍고의 지하철 건설도 경제적 필요성 보다는 뉴욕 지하철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있다.
성장기를 미국에서 보내고 모국으로 돌아온 그는 도미니카 공화국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으로 꼽히는 환 보스츠(1909~2001년)가 혁명당(PRD)을 떠나 창당한 중도좌파의 해방당(PLD)에 지난 1973년 입당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보스츠의 측근으로 성장하여 보스츠가 199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부통령으로 입후보했으나 패배했다.
그러나 1994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오명 속에 호이킨 발라게르 대통령이 중도하차하면서 1996년에 실시된 선거에서 그는 대권을 거머쥔다. 페르난데스는 5월16일 실시된 선거에서 3파전을 벌이는 가운데 38.9%의 지지로 2위를 차지했으나 결선투표에서 51.2% 지지로 역전승을 거뒀다.
페르난데스는 1차 재임(1996~2000년)중에 7%의 경제성장과 한 자리 수의 인플레 유지를 달성했으며, 이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그는 이 때 개발업자들이 현대식 항만의 건설을 제안하자 "우리는 카리브해의 싱가포르가 될 수 있다"고 호응하는 등 사회기반시설구축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페르난데스는 그 후에도 고속도로와 터널을 건설하고 외국자본 유입을 환영했으나 교육과 보건 분야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헌법이 대통령 연속재임을 금지함에 따라 2000년 대선에 출마하지 못했던 페르난데스는 지난 2003년 고유가와 3개 은행이 파산하는 등 국내경제가 거의 파탄에 빠진 가운데 구원투수로 각광을 받으면서 2004년 대선에 출마해 57%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다. 당시 지지율은 도미니카 공화국 역사상 2번째로 높은 것이었다.
그는 2기 임기중에도 국내에서 경제문제에서는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갖고 업무를 추진했으나 사회복지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경제발전을 가장 우선시하면서 식량, 보건, 교육 그리고 사법개혁 등 사회적인 문제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관료사회의 엘리트주의와 부패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으나 미온적이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2기 임기중에 7억 달러의 예산으로 수도 산토 도밍고에서 지하철 건설공사를 시작했는 데 이에 대한 찬반논란이 계속됐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류종권 특파원 rj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