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의 봄?…베네수엘라부터 칠레·콜롬비아까지 저항의 2019년
중남미 反정부 시위 물결 확산…부패 정부·경제난 등에 분노
"시위 주체·원인 다양함이 '아랍의 봄'과 차이점"…향배 주목
중남미 국가들에 올해 2019년은 저항의 한 해였다.
베네수엘라부터 최근 칠레, 볼리비아, 콜롬비아 등까지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나 생활고에 분노한 시민들이 잇따라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였다.
중남미에서 근 몇십 년간 볼 수 없었던 연쇄 시위 물결을 두고 2010년 말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반(反)정부 시위 '아랍의 봄'에 빗대 '라틴의 봄'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올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 포문을 연 것은 베네수엘라였다.
오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선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반대하는 야권의 시위가 전부터 이어져 왔는데 올해 1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새 전기를 맞았다.
과이도 의장의 등장 이후 반정부 시위는 더 탄력을 받았고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마두로 퇴진'을 외쳤다. 격렬한 시위와 혼란을 틈탄 약탈 등으로 16명 이상이 숨지기도 했다.
그러나 4월 말 과이도 의장의 군사봉기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군의 변함 없는 지지 속에 마두로가 굳건히 버티면서 베네수엘라의 시위는 다소 힘을 잃었다.
4월부터는 온두라스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다.
정부의 보건·의료부문 민영화 추진에 대한 반발로 시작한 시위가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대통령의 퇴진 시위로 이어졌다. 시위가 절정에 달한 6월엔 사상자도 나왔다.
정부가 군과 경찰을 투입해 시위를 진압하긴 했으나 이후 8월 에르난데스 대통령이 마약 범죄에 연루됐다는 주장이 나오자 다시 한번 퇴진 시위가 불붙기도 했다.
페루는 지난 9월 말 마르틴 비스카라 대통령의 의회 해산으로 한차례 폭풍에 휘말렸다.
부패한 의회를 성토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진 후 나온 해산 결정이었다.
의회는 대통령 직무 정지 시도로 맞서려 했으나 국민의 지지를 잃은 의회는 힘이 없었고, 페루의 혼란은 상대적으로 일찍 잦아들었다.
10월엔 에콰도르가 들끓었다.
레닌 모레노 정부가 유류 보조금을 폐지하기로 하자 이에 반대한 원주민과 학생들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다.
사상자가 잇따라 나오고 비상사태 선포와 통행금지 발령 조치까지 나왔다.
열흘 넘게 지속되며 에콰도르를 전쟁터로 만든 시위는 결국 모레노 대통령이 유류 보조금 폐지를 철회하고 백기를 들면서 끝났다.
긴축 반대 시위는 칠레로 바통이 넘어갔다.
수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시작된 시위가 지난 18일을 기점으로 급격히 과격해지며 '중남미의 오아시스'를 자처한 칠레를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칠레에서도 비상사태와 야간 통금이 등장했다. 그러나 에콰도르 시위와 달리 칠레 시위는 지하철 요금 인상 철회로도 끝나지 않았다.
이미 높은 공공요금과 낮은 임금과 연금, 극심한 사회 불평등 전반에 대한 시위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방화, 약탈 등으로까지 번지면서 20여 명이 숨지고 칠레 정부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국제회의를 취소하기까지 이르렀다.
칠레 정치권이 새 헌법 제정 관련 국민투표에 합의하면서 격렬했던 시위는 다소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산티아고 이탈리아 광장엔 연일 시위대가 모이고 있다.
볼리비아에선 지난달 20일 대통령 선거 이후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4선 연임에 도전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석연찮은 개표 과정 끝에 승리를 선언하자 야권 지지자들이 부정 선거라고 비난하며 시위를 벌였고, 지난 10일 모랄레스가 물러난 이후엔 그 지지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격렬한 시위 속에 지금까지 30명 넘게 숨졌고, 시위대의 도로 봉쇄로 수도 라파스 등에 연료난과 식량난도 빚어졌다.
가장 최근에 불붙은 곳은 콜롬비아다.
이반 두케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 학생들 중심의 대규모 총파업 시위가 21일 시작된 이후 연일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냄비 등을 두드리며 비교적 평화로운 시위를 펼치고 있지만 소요 사태로 3명이 숨졌고, 수도 보고타 등에 통행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와 함께 카리브해 빈국 아이티와 중미 니카라과에서도 반정부 시위와 사회 혼란이 계속되는 상태다.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는 중남미 시위는 원인도, 시위 양상도, 시위의 결과도 나라마다 다르다. 좌파 정권도, 우파 정권도 국민의 분노를 피해가지 못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중남미 시위를 다룬 기사에서 "억압받고 가난한 시민들이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10년 전 '아랍의 봄'과 달리 중남미 시위는 주체도 원인도 나라마다 다양하다"고 말했다.
다만 2000년대 초반 원자재 호황 속에 늘어난 중산층, 그리고 그 호황의 과실조차 함께 누리지 못한 빈곤층이 원자재 경기 하락에 따른 경제난 속에 함께 폭발했다는 점을 중남미 시위의 공통분모로 꼽기도 한다.
시위 물결이 지나고 난 후 중남미가 어디로 향할지도 관심사다.
칠레 디에고 포르탈레스대의 정치사회학자인 파트리시오 나비아는 WP에 "분노한 국민이 좌파든 우파든 포퓰리즘으로 돌아서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품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9/11/25 05:1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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