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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 1ℓ에 45원•••베네수엘라의 부(富)를 탐하라! (5.20)
관리자 | 2008-05-22 |    조회수 : 1195
[자원전쟁 특별기획(1-1)]'부의 원천' 오리노코江 유역, 초중질유 확보전 치열

  국제 유가 폭등으로 촉발된 에너지 문제가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공급은 한정돼 있는데 수요는 갈 수록 급증하고 있어 에너지 문제는 쉽게 진정될 것 같지 않다. 이에 따라 모자라는 에너지를 선점하기 위한 필사적인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에너지는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안보문제가 됐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자원이 빈곤한 처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CBS는 지구촌에서 에너지를 둘러싸고 지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지를 모색하는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편집자주]

▶유연휘발유 1ℓ 33원, 경유 23원•••석유 '국유화'의 결과
 
  지난 3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외곽의 한 주유소. 아돌포 벨루티니 씨가 올해로 21년 된 그의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고 있었다.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빛바랜 차량의 운전석 주행기판에는 38만 킬로미터라는 표시가 고단함을 더하고 있었다. 

  40리터 '만땅'을 넣은 그에게 부과된 휘발유 값은 3.88볼리바르. 우리 돈으로 1800원 가량이니 1리터에 45원에 불과한 가격이다. 

  그는 한국의 휘발유 값이 40배나 비싸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서는 "한국의 지도자들은 뭐하고 있냐. 비싼 휘발유 값이나 도로 통행료는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방해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휘발유 값이 거저라서 주머니 걱정은 우리보다 못하겠건만 벨루티니씨는 41년째 카라카스 인근의 슬럼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그의 자동차는 그나마 양반이다. 30년이 넘은 차량들도 쉽게 눈에 띈다. 검은 매연에 '탕 탕 탕' 불안한 엔진 소리를 내뿜는 차량들은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다. 휘발유는 '껌값'인데도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폐차 직전의 자동차를 몰 수밖에 없는 것은 이들이 멀쩡한 중고차조차 살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휘발유 소비자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싼 나라 중에 하나다. 이유가 있다. 베네수엘라의 휘발유 소매가를 정부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무연 휘발유는 1리터에 45원, 유연 휘발유는 33원, 경유는 23원에 정부가 일괄 공급한다. (그래서 주유소에는 가격표시가 별도로 돼 있지 않다) 국민에 대한 서비스 차원으로 싼 값에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바로 석유를 국유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베네수엘라 에너지•석유부 이반 알칼라 국장은 "석유 국유화로 인해 국민들이 석유를 싼 가격에 누구든 이용할 수 있게 됐다"며 "그만큼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복지가 향상된 것"이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는 2006년 3월 석유를 포함한 모든 천연자원을 국유화했다. 76년부터 에너지 산업을 국유화한 이래 몇 차례 국유화의 강약을 조절해오던 끝에 내린 결단이다. 

  이에 따라 2006년부터 모든 에너지 생산업체의 지분 60% 이상은 국영 석유회사인 페데베사(PDVSA)가 소유하고 있다. PDVSA는 베네수엘라의 주요 유전지대인 마라카이보, 팔콘, 오리엔탈, 아푸레 곳곳에서 하루 330만 배럴의 원유를 뽑아내고 있다. 

  이들 유전지대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베네수엘라 전체 수출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부 재정 수입의 75%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국제경제활동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인접국가인 콜롬비아가 과거 황금의 땅 엘도라도였다면 베네수엘라는 검은 황금이 나는 엘도라도인 셈이다. 

▶사우디 누르고 원유 매장량 세계 1위…'에너지 파워' 위상 실감

  이런 베네수엘라가 최근 몇 년 사이 돈벼락을 맞았다. 바로 오리노코 강 유역의 유전이다. 15만 제곱킬로미터(남한 면적의 1.5배)에 해당하는 오리노코 유역에는 1조 3000억 배럴의 어마어마한 원유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채굴 가능한 유전은 2360억 배럴. 여기에 기존의 다른 유전지대의 채굴가능 분량 770억 배럴을 합하면 베네수엘라의 가채매장량은 3130억 배럴이 된다. 

  이는 현재 세계 1위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채굴가능한 양 2600억 배럴보다도 많은 것이다. 바야흐로 베네수엘라는 세계적인 에너지 파워가 돼가고 있다. 이 오리노코 유역을 에너지•석유부 이반 알칼라 국장은 "베네수엘라의 부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물론 오리노코에 매장된 원유는 초중질유(extra-heavy oil)라는 단점이 있다. 초중질유는 타르와 같이 점성(粘性)이 강하기 때문에 운반이 어렵고 유황성분이 많아 환경오렴의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를 중유 정도로 업그레이드시키는 가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초중질유는 중유에 버금가는 자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모래와 섞여 있어 또 다른 초중질유인 '샌드오일'까지도 개발하려는 노력이 일고 있다. 샌드오일은 모래와 초중질유를 분리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우리나라도 캐나다에서 이 샌드오일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 총재의 고문인 카를로스 포텔라씨는 "오리노코 총중질유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매년 32~37억불을 정유시설 건설에 투자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이런 시설은 샌드오일 개발을 위한 시설보다는 훨씬 경제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여러 나라에서 오리노코 유역의 초중질유에서 '돈 냄새'를 맡고 달려들고 있다. 

▶베트남, 말레이시아까지 석유 냄새 맡고 진출•••한국 진출은 '난망'
 
  현재 오리노코 유역에서는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회사인 PDVSA가 하루 60만 배럴씩의 원유를 뽑아내고 있다. 개발 초기에 투자했던 코노코필립, 셰브론, 엑손모빌, BP가 이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오는 2012년까지 이 지역의 원유 생산량을 지금의 20배나 많은 1200만~1800만 배럴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베네수엘라 정부는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들 이외에서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27개 블럭으로 나눈 뒤 하나씩 분양하고 있는데 지리적으로 가까운 브라질 등 남미 여러 국가들이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이란 등 지구 반대편 국가들도 상당부분 진출해 있다. 

  베트남의 국영석유•가스회사인 페트로베트남의 카라카스 지사 트란 하 롱 지사장은 "2006년 차베스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고 베트남의 국회의장이 베네수엘라를 방문하는 등 정상급 교류 직후 베네수엘라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분양되지 않고 남아있는 블럭은 6개. 이 남아있는 공구를 차지하기 위한 각국의 신경전도 갈 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 김학도 과장은 "현지의 정세가 불안하고 미국과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자유로운 왕래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라며 "민간차원에서는 협력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숭철 베네수엘라 대사는 "자원 국유화로 자원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만큼 기업들 보다는 정부간 협력을 활성화 시키고 또 강화해야한다"고 조언했다. 

  현지의 우리측 인사는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도 진출해 있는 석유매장량 1위 국가에 한국의 석유공사 지사마저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베네수엘라 자원개발에 투자한 내역은 지난 97년 석유공사가 하루 생산량이 3000배럴에 불과한 오나도 광구 지분 14.1%를 인수한 게 전부다. (후원: 한국언론재단, 취재도움: 베네수엘라 대사관 최준호 서기관)

[ 신숭철 駐베네수엘라 대사 인터뷰 ]

  “자원외교는 총체적인 외교라야 합니다. 민간협력, 문화, 경제 등 모든 면에서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자원외교가 화두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석유매장국 1위 국가인 베네수엘라에서 4년 넘게 대사직을 수행하고 귀임을 앞둔 신숭철 대사는 우리나라의 자원외교의 방향에 대해 이렇게 제시했다. 그가 이렇게 전방위 외교를 강조한 것은 그 동안의 경험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 3월 서울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시몬 볼리바르 현악 4중주단과 성신여대 학생들간의 협연이 열렸다. 이들 베네수엘라 출신 음악도들은 전국적으로 25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베네수엘라 청년 오케스트라단 회원들이다. 이 조직은 오케스트라를 통한 사회개혁을 목적으로 75년에 결성된 베네수엘라의 대표적인 사회운동 단체이기도 하다. 

  LA 필하모닉 지휘자인 음악 천재 구스타보 주다멜이 바로 여기 출신이다. 주빈 매타, 로린 마젤 등 세계 음악계의 거장들이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극찬하고 있다. 신 대사는 바로 이 오케스트라단을 그 동안 전폭 지원해 왔고 그 결과 성신여대 학생들과 시몬 볼리바르 현악 4중주단의 교류가 성사된 것이다. 신 대사는 이 밖에 한국 음식과 영화를 주제로 행사를 여러 차례 개최하는 등 재임기간에 특히 문화외교에 많은 공을 기울였다.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미약하지만 '한류붐'이 일고 있다. 물론 '가을동화'나 '겨울연가'와 같은 한국 드라마의 도움이 컸지만 한국 대사관의 문화 외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신대사는 재임 기간 동안 이중과세 방지와 비자 면제 조치 등이 이뤄졌는데 이는 두 나라의 양자관계가 보통이상이라는 점을 보여준 예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이런 관계는 자원이 중시되는 미래에도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원외교의 해법 역시 어렵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는 우선 자원 국유화 현상은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자원 국유화로 자원에 대한 정부의 입지가 커진 만큼 정부와의 협력만 잘하면 여러 기업들을 상대로 해야 할 때 보다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브라질, 인도, 베트남 등이 오리노코강 유역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좋은 예다. 

  특히 베네수엘라가 자원 교류에 있어 그 동안 미국 일변도에서 다양한 국가로 수출시장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한국이 헤집고 들어갈 여지는 오히려 더 넓어졌다고 보고 있다. 

  "한국과 베네수엘라는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돈독한 양자 관계를 보여 왔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이 먼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런 정부간 협력 프레임워크를 에너지 분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던 그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 엉뚱하게도 고집스런 차베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카라카스(베네수엘라)=CBS경제부 권민철 기자 twinpin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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