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들여온 바이러스가 빈민들 덮쳐…중남미 코로나19의 비극
중남미 대도시에서 부촌→빈민촌으로 확산 지역 옮겨가
우버 기사로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콜롬비아 여성 소니아 산체스(53)는 지난 3월 수도 보고타의 공항에서 한 남자 승객을 태웠다.
안색이 좋지 않던 승객은 산체스의 경차 조수석에 앉아 기침을 해댔고, 며칠 후 산체스는 고열에 시달렸다. 그리고 3주 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했다.
AP통신은 29일(현지시간) 산체스의 이야기가 중남미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럽이나 미국에 다녀온 부자들과 함께 유입된 바이러스가 빈민들에게 퍼져 더 큰 타격을 주는 것이다.
중남미는 6개 대륙 가운데 코로나19가 가장 늦게 도달한 곳이었다.
중국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할 때는 감염자가 나오지 않다가 유럽과 미국으로 진앙이 옮겨온 3월께부터 감염자가 나왔다.
중남미 대부분 국가에서 첫 환자는 유럽이나 미국에 다녀온 이들이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휴양지에서, 미국 콜로라도 스키장에서 휴가를 보낸 이들이 감염된 채 돌아왔다.
초반엔 콜롬비아는 물론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 대부분 지역에서 부촌을 중심으로 감염자가 나왔다. 이들 지역의 확산세가 다소 진정되는 동안 대도시 빈민가에선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AP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초반 감염자의 48%가 부자들이 사는 4개 지역에 집중됐다.
그러나 현대적인 부촌인 팔레르모의 확진자가 4월 초 40명에서 5월 135명으로 느는 동안 노동자들이 주로 사는 플로레스의 확진자는 20명에서 435명으로 급증했다.
브라질의 상황도 비슷했다.
이탈리아 북부에 다녀온 후 상파울루 첫 확진자가 된 61세 남성은 부촌의 최고 시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뒤늦게 바이러스가 퍼진 빈민가에선 최근 감염자와 사망자가 치솟고 있다.
소득 수준과 코로나19 감염·사망과의 상관관계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연구는 없지만, 극심한 빈곤을 겪는 사람들이 코로나19에 더 취약할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위생이 열악한 좁은 곳에서 밀집돼 사는 경우가 많고 생계를 위해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해야 하기도 한다. 감염돼도 좋은 의료시설에서 치료를 받기 힘들다. 빈곤층은 평소 당뇨병,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제대로 관리할 여유도 없다.
또 초기에 부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무렵엔 병상에도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당수의 병원이 포화상태라 위급 환자가 병상을 찾아 전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칠레 산티아고대 마르셀로 메야 교수는 AP에 "병이 사회적으로 매우 계층화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워스모어대의 중남미사 교수 디에고 아머스는 "감염병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 가난한 이들이 가장 고통을 받는다"고 꼬집었다.
mihy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20/05/30 07: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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