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차분한 분위기…사흘간 코로나19 희생자 추모 기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대통령궁 안뜰에 주황색 꽃이 줄지어 바닥에 깔려 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이 길을 잃지 않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안내하는 꽃 '셈파수칠'이다.
올해는 셈파수칠 꽃길을 따라 돌아와야 할 영혼들이 더 늘었다. 멕시코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9만여 명의 영혼이다.
1일(현지시간) 멕시코인들은 여느 해와는 사뭇 다른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죽은 자들의 날'(망자의 날)을 맞았다.
죽은 이들의 영혼이 찾아온다는 매년 11월 1∼2일 망자의 날 멕시코는 주황색 셈파수칠과 알록달록한 해골 장식으로 가득 찬다.
사람들은 죽은 가족이나 친구들을 위해 집에 제단을 만들어 꽃과 사진, 촛불, 음식들을 차려놓고, 묘지를 찾아 죽인 이들을 기억하며 명복을 빈다.
해골과 유령 분장을 한 이들의 거리 행진은 전 세계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주요 볼거리다.
원주민 전통과 식민지 시절 들어온 가톨릭 문화가 결합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된 멕시코 망자의 날은 한마디로 산 자와 죽은 자가 한데 어울리는 축제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망자의 날 풍경도 바꿔놓았다.
많은 이들이 손꼽아 기다려온 거리 행진은 취소되거나 '가상 행진'으로 대체됐고, 거리에 설치됐던 해골 장식물도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하자 철거됐다. 성묘객이 한꺼번에 몰릴까 봐 멕시코시티를 비롯한 대부분 지역의 공동묘지는 아예 문을 걸어 잠갔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은 여느 해보다 늘어 전보다 떠들썩한 화려함은 덜하고 슬픔과 엄숙함은 더해진 망자의 날이 됐다.
'모든 영혼마다 꽃 한 송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궁 안에 마련된 제단은 올해 세상을 떠난 코로나19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이다. 대통령궁 내부에 망자의 날 제단이 설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셈파수칠로 장식된 분수를 중심으로 꽃길이 뻗어있고, 뜰 주변에는 멕시코 여러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전통에 맞게 마련한 스무 개가량의 제단이 놓였다.
우리 제사상과 비슷한 제단엔 뼈 모양으로 장식된 망자의 빵을 비롯해 과일, 고기, 술 등 고인이 생전 즐겨 먹던 음식들이 올라갔다.
전통 의상을 입은 원주민들이 제단을 지켰다.
다만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이곳 제단 역시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취재진 등에만 제한적으로 출입을 허용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지난달 31일부터 사흘간을 코로나19 희생자의 추모 기간으로 선포하고, 31일 이곳에서 원주민들의 추모 의식을 함께했다.
멕시코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9만1천753명. 치명률은 10%에 육박해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망자도 많다.
멕시코 보건당국에 따르면 올해 1∼9월 멕시코에선 예년보다 19만 명이 더 사망했다. 이중 70% 이상이 코로나19와 관련된 사망자이며, 나머지 사망자 중에서도 코로나19에 따른 의료 과부하 탓에 다른 질병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숨진 이들이 상당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대유행만 아니었으면 살아있었을 이들 수만 명이 올해 때 이른 죽음을 맞은 셈이다.
대통령궁의 한 제단을 지키던 이본 레타나는 제단 위 젊은 남성들의 사진을 가리키며 "코로나19로 숨진 대통령궁 직원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슬픔과 엄숙함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죽은 이들의 사진 옆에서 전통음식 타말을 나눠 먹으며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축제를 즐겼다.
mihy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0/11/02 02:1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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