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 가득 1300원”
베네수엘라 ‘거꾸로 유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사업을 하는 로베르토 모랄레스(33) 씨는 하루 종일 차를 몰고 다니지만 기름값 걱정은 하지 않는다.
모랄레스 씨가 38L 정도 들어가는 독일제 승용차에 고급 기름을 꽉 채우는 데는 1.32달러밖에 들지 않는다. 휘발유 값이 L당 0.07볼리바르(저옥탄가 기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달러화로는 0.03달러, 원화로는 34원 정도다.
이는 미국 기름값의 33분의 1수준으로 베네수엘라에서 판매되는 생수 가격의 15분의 1, 우유 값의 25분의 1 정도다.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27일 모랄레스 씨의 사례를 전하면서 산유국들이 보조금 제도를 통해 자국민에게 값싼 기름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만큼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1998년 이래 가솔린 가격을 고급은 L당 0.097볼리바르, 저옥탄가는 0.07볼리바르로 고정했다. 다른 산유국들도 보조금 제도를 도입해 이란의 가솔린 값은 L당 0.1달러, 사우디아라비아는 0.12달러밖에 안 된다.
이는 국가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사는 매년 11억 달러의 비용 부담을 안고 있다. 정부 전체로는 보조금 제도로 연간 90억 달러의 비용이 생긴다.
국내 기름 소비량은 지난 5년간 56%가량 늘었다. 인접국과의 기름값 격차가 크다 보니 매일 수천 배럴이 국경을 통해 밀수출된다.
보조금 혜택이 주로 여러 대의 차를 굴리는 부유층에 간다는 점도 베네수엘라 정부의 또 다른 고민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부유층 사이에선 ‘허머’ 같은 큰 차가 갈수록 인기다.
역대 베네수엘라 정부는 개선책을 고민해 왔지만 1989년 유가 인상 반발 폭동으로 수백 명이 숨진 경험이 있어 망설일 수밖에 없다. 1998년 가격 고정 제도를 없애기로 했다가 1999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취임으로 없던 일이 됐다. 차베스 대통령도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는 발언을 몇 차례 했다. 하지만 지지율이 2006년 이래 20%포인트 가까이 떨어지고 11월에 지방선거가 있어 포퓰리스트 정권으로선 어려운 과제다.
동이일보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