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냄새나고 끈적거리는 폐유도 이제는 없어서 못 구합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사는 메이어씨(37).폐유를 연료로 정제하는 블루스카이에 다니는 그는 지난달 20일 레스토랑 라피나타를 찾았다가 허탕을 쳤다.
음식을 만들고 남은 폐유 250갤런을 수거할 참이었지만 통 속은 이미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랠프 매킨타이어 블루스카이 대표는 "유가가 크게 뛰면서 폐유 도둑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며 "폐유로 만든 바이오디젤 가격이 디젤값보다 싸 연료용 폐유를 확보하는 일이 전쟁이 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주 블루스카이는 버클리에 있는 바이오연료 충전소에 계약 물량보다 4000갤런을 적게 보내야 했다.
블루스카이가 식당에서 갤런당 35~50센트에 사들인 폐유는 자동차용 바이오연료로 변신해 갤런당 4.89달러에 팔린다.
에너지 시장에 부는 '바이오 열풍'이 뜨겁다.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화석연료의 대체에너지로 주목받아온 바이오에너지에 거는 기대는 최근 유가 고공행진 속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 지원 아래 바이오연료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잇따르고,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개도국도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바이오연료 산업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엔 세계식량기구(FAO) 등이 "바이오연료 붐이 최근 글로벌 식량 파동의 한 원인이 됐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바이오에너지는 국제사회의 뜨거운 논란거리로 떠오른 상태다.
◆ 에탄올대국 브라질,34억ℓ수출
옥수수와 콩 등 곡물로 만드는 바이오에탄올 산업은 미국과 브라질의 주도 아래 급성장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석유중독'을 해소하기 위해 바이오연료를 개발,중동산 석유 수입을 향후 25%까지 줄이겠다고 표명한 상태다.
이와 관련,미 아르곤국립연구소는 미국의 에탄올 생산량이 2001년 17억7000만갤런에서 지난해 65억갤런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감소 효과는 연간 1000만t으로 자동차 150만대를 줄인 것과 같은 것으로 분석됐다.
브라질은 사탕수수를 원료로 세계 2위의 바이오에탄올 생산국가로 부상했다.
브라질은 모든 가솔린 차량에 20~25%의 바이오에탄올이 혼합된 연료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브라질은 생산량 20%에 이르는 연간 34억ℓ의 에탄올을 수출하며 짭짤한 수입도 얻고 있다.
브라질의 사례는 석유 부족에 대응하고 농업 발전을 촉진하려는 각국에 모델로 떠올랐다.
지난 4월 중국 정부는 곡물을 이용하지 않는 차세대 바이오연료를 생산할 5개 전략지역을 선정했다.
매년 15% 이상 급증하는 석유 수요에 맞추기 위해 허베이와 장쑤 충칭 등에서 얌과 카사바,고구마를 키워 에탄올연료로 활용할 방침이다.
우간다는 카사바를 이용한 바이오연료 연구에 2년간 9억4000만달러를 투자키로 했다.
미얀마는 벨기에 국토 면적과 맞먹는 농지를 바이오연료 원료인 자트로파 경작에 활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 항공ㆍ자동차업계,바이오연료 개발은 생존전략
바이오에너지는 업계에서도 화두다.
친환경에너지 개발로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가 급등에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자동차와 항공업계는 생존전략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지난 2월 영국의 버진 애틀랜틱은 바이오연료를 쓰는 '보잉747' 점보기를 런던 히드로공항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시범 운항해 화제가 됐다.
이는 에어버스가 올초 'A380' 기종으로 첫 대체연료 비행 실험을 벌인 것에 대항한다는 의미도 컸다.
에어버스는 202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며 대체연료 개발에 목을 맨 상태다.
지난 15일 항공기기업체인 허니웰도 제트블루,IAE 등과 협력해 상업용 항공기에 쓸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바이오연료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미 최대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2012년 내수용 자동차 중 에탄올연료 자동차 비중을 50%까지 늘릴 계획이다.
에탄올 자동차 모델 수도 올해 안에 11개,내년에는 15개로 늘리기로 했다.
릭 왜고너 GM 최고경영자(CEO)는 "GM의 에탄올자동차 'E85'운전자들로부터 연료 충전소가 부족하다는 불만 메일을 수없이 받았다"며 "미국에는 1만5000개의 새로운 에탄올연료 충전소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GM은 소매업체인 타깃과 월마트에 에탄올연료를 공급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13일 올해 세계 바이오연료 생산이 하루 150만배럴로 지난해보다 42만5000만배럴(57%)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IEA는 "바이오연료가 없었다면 2005년 이후 세계는 하루 100만배럴의 원유를 더 필요로 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메릴린치 글로벌상품분석팀의 프란시스코 블랜치 대표는 "몇 십억 갤런 규모의 에탄올 생산으로 에너지 병목 현상을 완화하고 있다"며 "에탄올연료가 없었다면 유가는 최소 15% 더 비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식량파동 주범 논란
미 농무부는 지난달 19일 "에탄올 생산에 쓰이는 옥수수 양이 최근 2년 새 두 배로 늘어난 131억부셸에 이르렀다"며 "미국에서 생산된 옥수수 22%가 에탄올 70억갤런을 만드는 데 쓰인 셈"이라고 밝혔다.
옥수수값은 2005년에 비해 두 배로 뛰어 현재 부셸당 5.78달러에 이른다.
비즈니스위크는 이 같은 옥수수값 상승이 콘 플레이크 한 박스에 2센트,옥수수 사료를 먹인 소의 우유 한 갤런에는 11센트의 추가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글로벌 식량 파동의 한 원인으로 바이오연료가 집중 비판을 받게 된 이유다.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인 장 지글러 박사는 "식량 가격 폭등을 가져오는 바이오연료 생산 확대는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식량전문가들은 미국의 옥수수 수출이 지난해 사상 최대에 달했는데도 재고는 10% 늘어난 점을 지적하며 바이오에탄올 붐으로 인한 농산물 수급 우려는 지나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벤처캐피털리스트인 비노드 코슬라는 "바이오연료 생산이 아니었으면 식품 가격은 오히려 더 올랐을 것"이라며 "늘어난 옥수수 생산이 애그플레이션(농산물발 물가 상승)에 커다란 쿠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연료를 둘러싼 논란은 쉽사리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유엔 식량정상회의에서도 바이오연료와 식량 파동의 연관성이 중심 의제로 논의될 예정이다.
유가 급등세가 지속될 경우 바이오연료 붐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미 캘리포니아대의 대니얼 스펄링 교수는 "좋은 바이오연료와 나쁜 바이오연료가 있을 뿐"이라며 "식물섬유와 해조류 등 식량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차세대 에너지 개발이 바이오연료 산업 성장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제신문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