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는 보리치 약간 우세…극과극 대결 속 중도 표심 관건
칠레 최연소 대통령에 도전하는 학생 지도자 출신의 30대 좌파 후보와 '칠레의 트럼프'로 불리는 50대 극우 후보.
두 '극과 극' 후보 중 남미 칠레의 다음 4년을 책임질 인물은 누구일까.
오는 19일(현지시간) 치러지는 칠레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는 칠레가 1990년 군부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되찾은 이래 가장 양극화된 선거로 불린다.
그간 칠레에선 중도좌파 연합이 주로 집권했고, 최근 15년 동안엔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번갈아 대통령궁에 입성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양대 중도 연합 후보들이 모두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대신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55) 후보와 좌파 가브리엘 보리치(35) 후보가 지난달 1차 투표에서 각각 27.91%, 25.82%를 득표하며 1, 2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둘 중 누가 당선되든 칠레 사회 전반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1차 투표에선 카스트 후보가 2%포인트 이상 앞섰지만, 결선을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보리치 후보가 앞서고 있다.
선거일 전 15일간의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 직전 발표된 조사에선 보리치 후보가 5%포인트가량 앞섰고, 이후 비공개 조사에선 격차가 3%포인트로 더 줄었다고 로이터통신은 14일 보도했다.
1999년 이후 칠레 대선에선 1차 투표 1위가 예외 없이 최종 승자가 됐지만 올해의 경우 워낙 예년과 다른 양상의 선거이다 보니 쉽게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보리치 후보는 칠레 남단 푼타아레나스 출신으로, 칠레대 재학 중이던 2011년 교육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학생시위를 이끈 지도자 중 한 명이다.
20대 때인 2014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이번 대선을 앞두고 좌파연합 '존엄성을 지지한다'의 경선에서 유력 후보였던 칠레공산당 소속 다니엘 하두에 산티아고 레콜레타 구청장을 꺾었다.
경선 승리 후 그는 "칠레가 신자유주의의 요람이었다면 이젠 신자유주의의 무덤이 될 것"이라며 "젊은이들이 칠레를 변화시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가 당선되면 칠레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된다.
결선 투표를 앞두고 지난 14일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 겸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자신은 보리치를 뽑을 것이라며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기도 했다.
이에 맞서는 우파연합 기독사회전선의 카스트는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이변을 연출한 인물이다.
9명의 아이를 둔 변호사 출신 연방 하원의원인 그는 이번이 두 번째 대선 도전이다. 2017년 대선에선 득표율이 8%에도 미치지 못했다.
2017년 출마 당시 군부 독재자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살아있었다면 자신을 뽑았을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피노체트 정권을 옹호하는 입장을 보여왔다.
정치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카스트는 기성정치권에 대한 비판, 불법 이민에 대한 강경한 태도 등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나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과 종종 비견됐다.
그는 북부 국경에서의 불법 이민자 유입을 막기 위해 도랑을 파겠다고 말한 바 있다.
불법이민과 범죄에 지친 유권자들이 카스트를 환영하면서 막판 지지율이 올라 1차 투표 1위까지 거머쥐었다.
대체로 보리치는 변화를, 카스트는 안정을 내세우고 있는데 두 후보 모두 결선을 앞두고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며 중도 유권자들을 공략하는 모습이다.
이번 칠레 대선은 지난 2019년 지하철 요금 인상이 촉발한 대규모 시위가 칠레를 뒤흔든 지 2년 만에 치러지는 선거다.
시위를 통해 군부정권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신자유주의 유물에 대한 반감이 커지며 변화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는 새 헌법 제정 국민투표의 압도적인 가결과 제헌의회 선거에서의 좌파 선전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일부 국민 사이에선 급격한 사회 변화가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어 칠레의 경제·사회 안정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불안감도 생겨난 상황이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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