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고 파라과이 대통령 당선인, 남미 밖 첫 방문국으로 한국 택해
쇠고기 촛불시위로 정국이 어지러운 지난 1일 한국의 대척점에 위치한 남미의 소국 파라과이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 ‘빈자들의 주교’로 널리 알려진 페르난도 루고(56) 파라과이 대통령 당선인이 아순시온에서 25시간의 비행끝에 서울에 도착한 것이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경제성장은 물론, 빈곤을 퇴치하고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 발전까지 이뤄낸 나라입니다. 한국의 발전 경험과 비법을 파라과이에 접맥하고 싶어 왔습니다.”
‘해방신학’에 깊이 영향을 받은 좌파 사제 출신인 루고 당선인은 2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의 인터뷰에서 ‘한국 방문 동기’에 대해 “사제로 활동할 때 한국이 남북으로 분단된 국가라는 정도의 인식밖에 없었지만 한국이 최근 30년간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루며 사회적으로 균형을 이뤄가는 성공적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어 배우고 싶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4월20일 치러진 대선후 루고 당선인은 남미 메르코수르 회원국들을 더러 방문했지만, 남미 밖으로 벗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아시아 국가를 순차방문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한국만을 방문하기 위해 왕복 50시간의 비행을 결행한 것에 대해 파라과이 정계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게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파라과이측 인사의 전언이다. 루고 당선인은 61년만에 이뤄진 파라과이 정권 교체 이후의 청사진을 만들기 위해 한국을 ‘따라 배울 모델국가’로 설정, 쉽지 않은 발걸음을 한 셈이다.
루고 당선인은 5일간의 방문에서 배우고 싶은 것에 대해 “한국이 어떻게 사회 빈부격차를 줄였는지, 짧은 시간에 경제발전을 이룬 비결은 무엇인지, 사회인프라는 어떤 과정을 통해 향상시켰는지, 한국전쟁 당시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45달러에 불과했던 나라가 어떻게 1인당 소득 1만8000달러인 사회가 됐는지를 알고 싶다”고 조목조목 소개했다. 이와 함께 그는 “한국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많은 첨단기술을 보유하게 된 배경과 남미가 해결하지 못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어떻게 한꺼번에 해결했는지 알고 싶다”고 강조했다.
루고 당선인은 한국과 파라과이의 공통점과 관련, “두 나라는 식민지와 혁명 등 비슷한 역사 경험을 갖고있다”고 소개한 뒤 특히 한국의 파라과이 농업이민자를 언급하면서 “한국이민자들의 부지런함과 강인함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줬다”고 설명했다.
루고 당선인은 사회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파라과이 군정에 반대해 20차례 이상 투옥됐던 투사이고, 그의 형제들은 군정의 압박에 못이겨 수차례 망명을 하는 등 어려운 시대를 보냈다. 루고 당선인은 1977년부터 30년 가까이 사목활동을 하는 동안 남미의 급진적 변혁을 추구하는 해방신학에 심취했던 사제로 “파라과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혀왔다. 파라과이의 20개 야당연합에 의해 야당 단일후보로 영입된 그는 지난 4월 대선에서 집권여당 후보를 10%포인트차로 따돌리고 승리했다.
좌파 사제 출신 정치인 루고 당선인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남미 좌파 벨트의 강화현상”이라고 평하면서 쿠바와 베네수엘라, 볼리비아로 이어지는 좌파블록이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으나 루고 당선인은 “나는 좌파가 아니다”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저는 사제생활을 할 때도 정치이념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경제발전과 빈곤퇴치가 제 핵심관심사일 뿐 저는 좌파도 우파도 아닙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나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과는 다른 길을 갈 것입니다.”
루고 당선인은 정계 투신에 앞서 교황청에 의견을 물었는데 “사제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아 현재는 주교직을 중단한 상태다.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일어서는 그에게 서울광장을 꽉 채운 쇠고기 촛불시위대에 대해 물었더니 그의 수행인은 “역동적인 한국의 민주주의 현장을 접하게 되어 행운이라는 말을 당선인이 했다”고 전했다. 루고 당선인은 2일 이명박 대통령, 한승수 총리와 면담한 데 이어 3일부터 한국개발연구원, 농촌진흥청, 전자부품연구원(KETI),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을 방문, 현안에 대해 토론하며 건국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뒤 5일 이한한다.
문화일보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