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새로운 책 『거울들』이 나왔다. 갈레아노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사람들 사이에서는 필독서로 통하는 『수탈된 대지』(원제 『라틴아메리카의 드러난 혈관』)를 쓴 저자다. 지난 4월 멕시코, 아르헨티나, 스페인에서 동시 출간된 이 책은 ‘세계사나 다름없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하듯 600여 편의 짤막한 이야기들을 통해 역사(신문이나 사진)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 인물이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한다. 죽은 자들이 되살아나고, 익명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갖는다. 그들은 바로 주인들의 성과 신전을 세운 남자들, 두려운 것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잊혀진 여자들, 무지를 경멸하는 사람들에 의해 무시된 동양과 남반구, 세계가 지니고 있고, 숨기고 있는 많은 세상, 사색하는 자들과 고민하는 자들, 묻는다고 형벌에 처해진 호기심 많은 자들, 세상의 소금이었고, 지금도 소금인 멋진 반란자와 패배자와 미친 자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한마디로 소외된 자들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다. 저자는 제목이 암시하듯 거꾸로 보거나, 거꾸로 보이는 거울의 속성을 바탕으로 세상과 역사를 직시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들을 발견했으며, 우리가 어떻게 이 사회를 부정과 불평등,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는 사회로 바꾸었는가에 대해 묻는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좋고 나쁨을 가리고,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가에 대해서도 반문한다. 그러면서 기존의 승리자들이 기록하는 역사적 인식과 관점을 철저하게 반박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불의 기억』에서처럼 지극히 방대한 역사를 편력하고 있다. 그리스에서 로마로, 이집트에서 메소포타미아로, 중세에서 2차 세계대전으로, 오늘날에서 르네상스로 거침없이 드나들면서 이른바 정사로 불리는 역사를 전복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역사는 대학과 강단에서 기록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나 고루한 사회과학이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방식의 변화이다. 그의 시각은 ‘거울’이 상징하고 함축하는 의미처럼 명확하게 반대편이다. 예를 들어 승리자들이 기록해온 역사에 맞선 ‘하위 주체’의 입장을 취하며, 그러기에 당연히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주도하는 ‘다보스 경제포럼’에 맞선 세계사회포럼인 ‘포르투 알레그레’에 위치하는 것이다. 그는 현대사회의 모순에 대해 이렇게 묻는다. “사람보다 자동차를 먹여 살리는 게 더 중요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으로 불리는 갈레아노의 저작들이 주요 언어로 끊임없이 번역돼 읽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먼저 그가 다루는 테마가 시대나 장소를 구분 짓는 경계나 한계를 허물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안에는 서사와 에세이, 시와 연대기가 병행하며, 과거의 기억과 현실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 속에 우리 인간의 영혼과 저잣거리의 목소리들을 담아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역사를 문학이라는 그릇으로 담아낼 줄 아는 작가적 역량이다. 저자는 특유의 농담과 반어, 지독한 조롱과 풍자와 시적 감성이 어우러진 언어로 우리 인간의 허위와 가식을 발가벗기는 한편, 지극히 일상적이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을 역사의 주체로 되살려내는 것이다.
이 책 『거울들』은 판에 박혀 찍혀 나오는 기존의 역사책에 맞서는 또 하나의 역사책이다. 갈레아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책에 담긴 역사는, 그 역사의 진실은 거울 맞은편에 있다. 정창 <번역가>
1940년 우루과이 출생.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며,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정치적 탄압으로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에서 망명생활을 했으며, 주요 저작은 국내에도 번역된 『수탈된 대지』(범우사), 『사랑과 전쟁의 낮과 밤』(한길사),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르네상스), 『불의 기억』(3부작, 따님) 등이 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