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서 전직 대통령의 정치활동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2006년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퇴임한 리카르도 라고스 전(前) 대통령이 최근 분주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는 데 따른 것.
좌파 연립여당인 '콘세르타시온'의 대주주인 라고스 전 대통령은 최근 국내 정치 사안에 대해 사사건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그는 각종 강연과 현장 방문 등을 통해 언론노출 빈도를 높이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내년 말로 예정된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란 게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직 대통령의 중임에 대해선 아무런 제한이 없는 칠레 헌법상 라고스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시도는 법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라고스 전 대통령에 대해 '도덕적,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칠레 좌파정권이 당면하고 있는 국정 난맥의 원인 제공자인 라고스 전 대통령이 재집권을 위한 선거운동에 뛰어든 것이 올바른 행동이냐는 지적이다.
라고스 전 대통령은 좌파 정권의 명운에 부담이 될 정도로 완벽한 실패작으로 평가되는 교통개혁 정책 '트란산티아고'를 추진한 장본인이다.
대중교통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저소득 근로자 층을 겨냥해 입안된 트란산티아고는 주먹구구식 정책집행으로 인해 지지층 이탈을 불러일으켰고, 현재 '돈먹는 하마'로서 바첼레트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자신이 추진한 정책 때문에 후임 대통령이 막대한 고난을 겪는 상황에서 자숙은 커녕 재집권에 도전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정치활동을 재개한 시기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재집권 도전이 법적으로 용인된다고 하더라도, 현직 대통령의 임기가 2년 가까이 남아있는 시점에서 차기 대선 레이스를 펼치는 것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좌파 연립여당 소속 정치인들까지 "라고스 전 대통령 때문에 현 바첼레트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고 우려할 정도다.
라고스 전 대통령은 퇴임을 앞둔 2005년 "정치의 핵심은 은퇴 시점을 아는 것"이라며 "재출마는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그는 "유권자는 과거에 대해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 투표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산티아고=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