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2024년 총선(대선과 함께 치러짐)을 앞둔 멕시코에서 의석수 감축과 정당 분배예산 축소 등을 골자로 한 정부·여당의 선거제도 개편안이 야당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멕시코 하원 의회 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하원은 대통령실에서 발의한 선거제도 개정안 논의를 지난주부터 진행하고 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제안에 따라 만들어진 이 개정안의 핵심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멕시코 비례대표제를 폐지해 의원 수를 대폭 줄이는 데 있다. 개정안대로라면 상원은 128석에서 96석으로, 하원은 500석에서 300석으로 각각 감소한다.
또 정당의 공적자금 조달 규모를 삭감해 오로지 선거 운동을 위해서만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아닌 주 차원의 선거위원회 폐지, 대중매체에서의 정치 홍보 하루 30분 제한, 하원에서의 결정이 아닌 국민투표로 선거재판소 판사 등 선출, 전자투표제 도입 등도 담겼다.
이런 다소 급격한 변화를 직접 구상한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투·개표 과정에 들어가는 예산을 크게 줄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선거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다"며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선거를 구현할 수 있고, (전자 시스템으로) 외부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민행동당(PAN)과 민주혁명당(PRD)을 비롯한 야당에서는 그러나 개정안은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여당(국가재건운동)과 그 연합 세력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데다 중앙 정부(연방기관)에 선거 행정이 집중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정당 자금 규모 감축이나 홍보 제한 등은 "집권당에만 좋은 일"이라며 강하게 반대하는 분위기다. 현재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정부·여당이 사실상 '독주체제'를 갖출 수 있다는 우려도 깔린 것으로 전해졌다.
수도 멕시코시티를 비롯한 전국 50여곳에서는 전날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선거관리위원회는 건들지 말아라"는 구호와 함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멕시코시티 시위에 참여한 비센테 폭스 전 대통령(국민행동당)은 "우리는 당파적 색채 없이 시민으로서, 그리고 같은 대의를 위해 모였다"며 "암로(AMLO·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별칭)가 약간의 상식이 있다면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전날 시위를 '소수 보수주의자의 정치적 스트립쇼'라고 깎아내린 뒤 "오히려 이런 시위를 해서 좋다. 묻힌 채로 남아 있다면 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어 '시위에 20만명이 참여했다'는 야당 등 주장에 대해 "소칼로 광장을 가득 채우려면 12만5천명은 돼야 하는데,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며 "선거제 개편은 핑계일 뿐 시위자들은 변화에 반대하는 세력"이라고 덧붙였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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