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멕시코 외교장관이 14년 만에 재개된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FTA 직접 협상 주체(경제부)는 아니지만, 불과 몇 개월 전 방한해 자국 투자 세일즈에 나섰던 외교 수장의 발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멕시코가 양국 논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1일(현지시간) 멕시코 경제전문지 엘에코노미스타와 엘피난시에로 등에 따르면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외교장관은 이날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28차 대외무역회의에서 "멕시코는 먼저 (한국과의) 협정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뭔지 설계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멕시코 주요 경제인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왜 우리는 한국에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라고 운을 뗀 뒤 "우리는 (그간) 다양한 분야, 특히 전력 분야나 자동차 산업과 관련된 것을 주로 다뤘다"고 설명했다.
에브라르드 장관은 '양국은 FTA를 맺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 태도를 언급, "물론 (협정을) 할 수 있다"면서도 "멕시코가 이 협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뭔지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고 협상 중단 배경을 설명했다.
에브라르드 장관은 멕시코 정부 내 몇 안 되는 지한파 중 한 명이다.
지난 7월 방한해 외교장관 회담을 하기도 했는데, 당시 박진 외교부 장관은 양국 FTA 공식협상의 조속한 재개 중요성을 강조하고 에너지·인프라 협력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한 바 있다.
에브라르드 장관도 멕시코의 아동 코로나19 예방접종 캠페인을 위해 화이자 소아용 백신을 지원하기로 한 것에 대해 감사를 전하는 한편 도스 보카스 정유시설 건설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등 비교적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우리나라 경제계 인사와 만나 전기 자동차 배터리 생산 등에 대한 투자를 홍보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번 '협상 연기' 메시지는 한국과의 FTA 협상에 대한 멕시코 정부 내 부정적 기류를 드러낸 것이라기보다는 향후 논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애초 멕시코는 한국과의 FTA 협상에 그다지 적극적인 편은 아니었다.
2006년 FTA 전 단계 격인 전략적 경제보완협정(SECA)을 개시했으나, 당시에도 멕시코의 소극적인 태도로 2008년께 협상이 중단됐다.
양국은 이후 2016년 정상회담을 계기로 협상 재개에 합의한 뒤 지난해 8월과 10월 통상장관 회담, 11월 차관급 협의를 거쳐 후속 절차를 추진해왔다. 이어 지난 3월 협상 공식 재개를 합의한 바 있다.
다만 양국 협상은 큰 진척을 보지 못했고, 멕시코 경제장관 교체 등 영향으로 현재는 사실상 교착 상태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달 멕시코 경제지 엘피난시에로는 "한국은 FTA 협상을 시작할 준비가 100% 돼 있지만, 멕시코 정부가 아직 준비되지 않아 미뤄지고 있다"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안 본부장은 "(이런 이유로) 우리는 멕시코 정부에 다음 단계를 시작할 협상 날짜를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멕시코는 중남미 국가 중 우리나라의 1위 교역상대국이다. 반대로 멕시코 입장에서 한국은 아시아 2위 교역국이다.
멕시코의 높은 관세율과 양국 간 상호보완적 무역구조를 고려하면, FTA를 체결할 경우 우리 업계 수출 여건은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2005년 멕시코와 무역협정이 발효된 일본과의 상대적 경쟁 열위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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