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정치적 무능'을 사유로 탄핵당한 뒤 반란 및 음모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페드로 카스티요(53) 페루 전 대통령 망명 신청을 놓고 멕시코와 페루 정부가 신경전을 벌였다.
9일(현지시간) CNN 스페인어판과 멕시코 일간 라호르나다·엘피난시에로 등에 따르면 카스티요 전 대통령 변호인은 파블로 몬로이 페루 주재 멕시코대사와 만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 형태의 망명 신청서를 전달했다.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교부 장관이 트위터에 공개한 해당 문서에 따르면 변호인은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탄압을 받고 있다면서 망명을 승인해달라고 호소했다.
변호인은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사법기관의 근거 없는 박해를 받고 있다"며 "국가의 모든 기관을 장악한 이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완전히 고립됐다"고 주장했다.
앞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지난 7일 의회의 탄핵 표결 직전 망명 시도를 위해 리마에 있는 멕시코대사관에 가려 했지만, 경찰에 전격 체포되면서 무산된 바 있다.
멕시코 정부는 카스티요 전 대통령 망명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교부 장관은 "페루 당국과 협의에 나설 것"이라며 사실상 망명 요청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도 전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페루 의회의 탄핵 가결을 '엘리트 정치 집단이 합법적으로 구성된 정부를 흔든 소프트 쿠데타'라고 규정하며 (페루 전 대통령은) 괴롭힘과 대립의 희생자"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멕시코는 정치적 망명지로서의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쿠바 독립운동가 호세 마르티,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 과테말라 시민운동가 리고베르타 멘추 등이 멕시코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이에 대해 페루 정부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날 페루 외교부는 몬로이 멕시코 대사를 초치해 "멕시코가 내정 간섭을 하고 있다"며 강력한 항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라호르나다는 보도했다.
페루 정부는 국제법 규범 내에서 멕시코와의 상호 존중과 우호, 협력 및 통합이라는 고유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스티요 탄핵에 대한 페루 여론은 극도로 분열됐다.
특히 카스티요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주요 도로 봉쇄에 이어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도 불사하면서 항의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2026년으로 예정된 대선과 총선 일정을 대폭 앞당겨 이르면 내년 중 조기 선거를 치르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페루 일간 안디나는 전했다.
사열하는 페루 대통령
사열하는 페루 대통령
(리마 EPA=연합뉴스)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가운데)이 9일(현지시간) 수도 리마에서 열린 국군의 날 아야쿠초 전투 기념행사에서 주요 장성과 함께 연단으로 걸어가고 있다. 2022.12.10 [페루 대통령궁 제공]
디나 볼루아르테(60) 페루 대통령은 현지 기자들에게 "내가 이번 사태를 일으킨 것은 아니다. 그저 헌법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며 야당 및 시민단체 등과 조기 선거에 대해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교도소에 있는 카스티요 전 대통령 방문 의사도 밝힌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이르면 이번 주 내로 새 정부 각료를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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