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반정부 시위로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 페루에서 대통령이 시위대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대통령선거를 올해 12월로 앞당기자고 제안했지만, 페루 의회가 이를 거부했다.
AP·AFP 통신에 따르면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선거를 올해 12월로 앞당기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승인해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페루 의회는 지난달 이미 2026년 치러질 예정이었던 선거를 2024년 4월로 앞당기는 안에 동의했는데,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제안은 이를 올해 말로 더 당기자는 것이었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지금의 정치적 위기를 '수렁'이라고 표현하면서 의회에 표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의회는 이를 반대했다. 이 안건은 28일 오전 열린 본회의 표결에서 반대 65표, 찬성 45표, 기권 2표로 부결됐다. 7시간이 넘는 토론과 표결이 끝난 뒤 호세 윌리엄스 페루 의회 의장은 "조기 선거를 위한 개헌안이 부결됐다"고 발표했다.
표결 이후 '재심의' 요청이 제기돼 오는 30일 회의에서 다시 논의될 수 있지만, 표결 결과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AFP는 전했다.
선거를 올해 안에 치르자는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제안은 반정부 시위가 날로 격화하는 가운데 민심을 조금이나마 달래보려는 시도로 풀이됐다.
페루에서는 지난해 12월 7일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반란·음모 혐의로 구금된 뒤 이에 반발하는 시위가 50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도시 엘리트들이 농촌 출신의 카스티요 전 대통령을 축출했다'는 반감에 농촌 지역 원주민들이 수도 리마로 몰려들어 상경 투쟁을 벌이는 등 극심한 갈등과 혼란이 빚어졌다. 시위대는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사임과 의회 해산, 조기 선거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시위대의 방화와 시설물 점거 등 폭력 행위에 정부가 강경 진압으로 맞서면서 하루에 17명이 숨지는 등 사상자가 속출했다.
중앙정부 행정과 공공서비스 실태를 감시하는 헌법 기관인 페루 옴부즈맨 사무소에 따르면 지난 7주간 진압 부대와 시위대의 충돌로 47명이 숨졌다. 인권단체는 아기 2명을 포함해 민간인 10명이 시위와 도로 봉쇄 탓에 필요한 의약품이나 치료를 받지 못해 숨졌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시위대가 주요 고속도로를 막아버리면서 사태가 더 심각해졌다.
페루 정부는 지난 26일 기준으로 전체 25개 지역 중 8곳에서 교통망이 차단됐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도로 봉쇄를 해제하기 위해 곧 군경을 투입할 방침이다.
남부 지역에서는 몇 주간 도로가 막히면서 식량과 연료 등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주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AFP는 전했다.
페루 수도 리마에서 남쪽으로 200㎞ 떨어진 도시 이카의 상점 직원 길예르모 산디노는 "가스도, 휘발유도 없고 식료품점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썩지 않는 물건들뿐"이라며 "모든 게 너무 비싸다. 정상 가격의 3배까지 뛰었다"고 말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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