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온두라스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키로 한 결정을 계기로 중남미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미국 AP통신이 15일(현지시간) 분석했다.
AP통신은 이번 결정이 중남미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미국의 장악력이 퇴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며, 중국이 최근 20년간 이 지역에 주요 인프라·에너지·우주 계획으로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쏟아부었다고 지적했다.
AP가 인용한 미국평화연구소(USIP) 자료에 따르면 2005년과 2020년 사이에 중국이 라틴아메리카에 투자한 규모는 1천300억 달러(약 170조 원)가 넘는다.
중국과 이 지역 사이의 무역도 급증해 2035년에는 연간 7천억 달러(920조 원)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는 온두라스 중부에 수력발전 댐을 건설하는 계획에 3억 달러(3천900억 원) 규모의 차관을 제공했다. 건설은 중국수전(Sinohydro)이 맡았다.
AP는 중국과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사이의 지정학적 긴장이 서서히 끓어오르면서 중국의 이런 투자가 결실을 봤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지난주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외교관계 복원을 중재한 데 이어 온두라스와 수교하게 되면서 최근 1주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예상을 벗어난 외교 정책상 성공을 거뒀다고 AP는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만을 외교적으로 승인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13개국만 남게 됐다. 다만 파라과이와 과테말라 등 소수만 남은 라틴아메리카의 대만 수교국들은 이날 대만에 대한 지지를 이어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엔리케 레이나 온두라스 외무장관은 이날 AP에 온두라스가 과거 대만과의 관계에 "고마움을 느낀다"면서도,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때문에 대만과 단교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레이나 장관은 "이는 정치적인 결정으로, 세계가 이런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면서 "복잡한 결정이지만 온두라스의 외교정책은 국민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레이나 장관은 이날 채널5 방송에 출연해 온두라스가 대만 측에 원조를 늘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온두라스의 요청은 대만이 제공해온 연간 5천만 달러(660억 원) 규모의 원조를 두 배로 늘려 주고 온두라스가 대만에 진 6억 달러(7천700억 원) 규모의 부채를 "재조정"해달라는 것이었으나, 대만으로부터 긍정적 답을 받지 못했다고 레이나 장관은 밝혔다.
온두라스는 중남미 지역 최빈국 중 하나이며, 1천만에 가까운 인구 중 거의 74%가 빈곤 상태로 살고 있다.
지난 14일 이뤄진 온두라스의 대만 단교 방침 발표는 그간 대만과 수교를 유지하도록 중미 국가들을 설득했으나 성과가 없었던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 타격을 가했다고 AP는 분석했다.
중미 지역 국가들 가운데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은 이미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상태다.
온두라스의 대만 단교 방침 발표는 미국 정부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장악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게 콜롬비아의 엑스테르나도 대학교에서 중국 관련 문제를 연구하는 데이비드 캐스트릴런-케리건 연구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온두라스와 같은 국가들의 입장에서, 베이징의 (중국) 정부를 승인하지 않는 것은 기회를 잃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며 "(미국은) 모든 면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면에서 특히 그렇지만 외교·정치·문화적으로도 그렇다"고 지적했다.
레이나 외무장관은 온두라스의 필요와 결정을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이해하고 존중해야만 한다"고 AP에 말했다.
개발 자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국가들에 중국 정부가 투자하고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을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존 토이펄 마이애미대 정치학과 교수는 중국이 투자와 원조를 '외교적 무기'로 휘두르고 있다면서,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중국 투자를 받은 후 부채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경우 중국의 지원을 받은 인프라 프로젝트는 중국 업체들에 의해서만 수리가 가능한 탓에 비용이 더 늘어난다며 "마약 거래상이 잠재적 고객에게 '처음 맞는 것은 무료'라고 하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고 AP에 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 공보담당자는 온두라스가 경제적 이유를 들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키로 한 데 대해 "온두라스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공식 국호)이 실현되지 않은 많은 약속을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논평하면서 "다음 조치들을 계속 면밀히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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