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남미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 정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국면에서 이스라엘을 비판했던 과거 양상이 다시 목격되는 가운데 좌파 정권에서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1일(현지시간) 남미 주요국 관보와 공식 소셜미디어 보도자료를 종합하면 전날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 단절을 발표한 볼리비아 외교부는 주네덜란드 대사관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자국민 보호 등 관할권을 부여했다.
동시에 가자지구에 인도적 지원을 위한 구호품 전달 작업도 착수했다.
앞서 볼리비아 대통령실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인권 침해를 입고 있다"며 이스라엘과의 단교를 선언했다. 외교부 역시 기자회견을 통해 "이스라엘은 국제법을 위반해 민간인 생활에 필수적인 물품을 봉쇄했다"고 비난했다.
지난 달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과 관련해 이스라엘과 단교를 선언한 건 볼리비아가 처음이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이에 대해 "볼리비아 정부가 테러리즘에 굴복했다"며 "어차피 그간 양국(이스라엘과 볼리비아) 관계가 깊었던 것도 아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앞서 볼리비아는 에보 모랄레스 전 정부 시절인 2009년 이스라엘과 관계를 끊었다가 2020년 복원한 바 있다.
남미국가 중에서 '반(反)이스라엘'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볼리비아만이 아니다.
앞서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비유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낸 데 이어 "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며 단교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도 전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수많은 민간인 희생을 야기하는 등 국제법의 기본 규범을 어겼다"며 호르헤 카르바할 주이스라엘 칠레 대사를 국내로 불러들였다고 썼다.
'반미·반이스라엘' 성향을 드러내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와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정부 역시 관영 언론과 유엔 연설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두둔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규탄을 이어가고 있다.
남미 국가들의 이스라엘 비난 노선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드러난 바 있다.
대부분 좌파 정부가 들어섰을 때인데, 2014년 가자지구에서의 충돌 당시엔 브라질을 시작으로 에콰도르, 니카라과, 칠레, 페루, 엘살바도르 등이 이스라엘 주재 자국 대사를 국내로 철수시켰다.
중남미 대표적인 강경 좌파 인사였던 모랄레스 볼리비아 당시 대통령은 "이스라엘은 테러 국가"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지난해엔 보리치 칠레 대통령이 요르단강 서안에서 10대를 숨지게 한 이스라엘군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이스라엘 대사 신임장을 거부해, 이스라엘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보리치 대통령은 하원 의원 시절이던 2019년 칠레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새해 축하 선물로 꿀을 받고서 '고맙지만, 모국에 팔레스타인 영토를 반환하라고 요청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취지의 소셜미디어 글을 올린 바 있다.
2011년 전후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지위 인정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불거졌을 땐 멕시코·과테말라 등 일부를 제외한 남미 국가들이 대부분 팔레스타인 유엔 가입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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