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국 되면 석유 대금 장기간 나눠내
15개국서 출발 … 가입 신청 최근 늘어
고유가로 남미 반미국가들의 기수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영향력이 매우 커졌다.
베네수엘라와 쿠바가 만든 중남미와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의 석유 동맹인 ‘페트로카리브’의 회원국 숫자가 최근 부쩍 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22일 보도했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회원국이 이 동맹으로부터 얻는 혜택이 너무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회원국들은 베네수엘라에서 석유를 살 때 일부만 현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연 1% 저리로 25년간 상환하면 된다. 특히 석유 대금 상환을 현금이 아닌 현물로 할 수 있다는 규정도 매력적이다. 현물에는 농산물을 포함해 서비스•물품•관광 등도 포함될 수 있다. 쿠바의 경우 석유 대금 대신 2만 명의 의사와 교사를 파견해 갚기도 했다. 베네수엘라가 이를 벌충하는 금융 비용으로 쓴 돈만 20억 달러에 달한다. 회원국들은 그동안 9억2100만 달러를 아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페트로카리브는 2005년 설립됐다. 처음 출발할 땐 15개 국가가 회원이었다. 그런데 올해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등이 가입해 회원국은 중남미와 카리브해 일대 18개국으로 늘어났다. 코스타리카도 가입 신청을 내놓은 상태다.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가입을 거부해 왔던 바베이도스도 최근엔 가입을 고려할 수 있다는 의사를 흘리고 있다.
페트로카리브는 단순한 에너지 동맹체가 아니다. 아이티는 초기에 가입하길 원했지만 베네수엘라가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아이티 정부가 미국의 지원으로 설립됐다는 게 반대 이유였다. 아이티는 결국 정권이 바뀐 후인 2006년 4월이 돼서야 회원이 될 수 있었다. 이 동맹은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면서 카리브해의 수백만 명을 베네수엘라가 살린다는 식의 정치적 공세로 이용되기도 한다.
페트로카리브 뒤에는 석유를 미끼로 지역에서 반미 맹주의 역할을 공고히 하겠다는 차베스의 야심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13일 “약소국을 돕는 게 베네수엘라의 사명”이라고 강조하면서 회원국들에 주는 혜택을 더욱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석유 대금의 50%를 장기 저리로 상환할 수 있도록 하던 것을 60%로 늘리기로 했다.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를 돌파하면 구매가의 30%만 90일 이내에 내고, 나머지는 장기 저리로 상환하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발표했다. 또 이 지역 식량 증산을 돕기 위해 4억6000만 달러어치의 펀드를 만들어 비료와 농업 설비를 지원하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반대파들은 페트로카리브에 대해 동맹을 돈으로 사는 ‘뇌물 외교’라고 비난한다. 차베스의 기대와 달리 페트로카리브의 정치적 결속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2006년 차베스의 주도로 베네수엘라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도전했지만 페트로카리브 회원국들이 이를 지지해 주지 않았다는 점을 그 증거로 꼽고 있다. 또 최근 가입한 국가 중 상당수는 반미에 동조하지 않는 중도우파 정권이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페트로카리브의 확대가 차베스의 반미 맹주 역할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관심거리라고 FT는 분석했다.
중앙일보 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