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소굴’ 남미 빈민촌의 변신
[동아일보 2006-10-31 04:41]
[동아일보]
《한국에서 지구 정반대 쪽에 놓인 남미. ‘미국의 뒷마당’이라는 인식에다 머나먼 거리 때문에 우리에겐 더더욱 낯설었다. 좌파정권의 돌풍 또는 포퓰리즘 정책의 후유증으로나 간간이 이목을 끌어온 이곳이지만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만큼은 지구촌 어느 곳과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언론재단의 지역전문가 과정을 통해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삶의 현장’을 둘러봤다.》
▼ “헉! 이런 삶이” 관광명물 된 판자촌 ▼
대선으로 두 달 남짓 브라질 전국이 술렁였지만 이런 문제에는 관심조차 없는 별천지가 브라질 산기슭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곳은 바로 판자촌인 ‘파벨라(Favelas)’. 공권력 대신 범죄조직의 통치를 받는 초법적인 공간이다.
영화 ‘시티 오브 갓(신의 도시)’으로 세계인들에게 소개된 이곳이 최근에는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3대 미항인 리우데자네이루에 산재한 파벨라는 720여 개. 가이드를 따라 나선 남미 최대의 판자촌인 호시냐 지역에만 무려 28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도 9월호에서 이른바 ‘재앙 휴가(disaster vacation)’ 여행지 5곳의 하나로 이곳을 소개했다.
2시간 남짓한 관광에 30달러를 받는 파벨라 관광은 범죄조직의 ‘허가’로 시작됐다. 관광 프로그램을 시작한 헤자니 헤이스 씨는 “범죄조직에 수익의 일부를 주고 나머지로 이곳 사람들을 교육하면 서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8년차 관광 가이드 루이사 페르난데스 차베스(28·여) 씨는 어른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인도하며 “숨바꼭질하기엔 훌륭하죠?”라며 환하게 웃는다.
시궁창의 썩은 냄새가 시장통의 비릿한 냄새와 겹쳐 진하게 전해진다. 이리저리 얽힌 전깃줄을 보며 현기증이 났다. “전기료를 내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루이사 씨는 “여기선 세금도 안 내요”라고 말했다. 징세 당국의 손길도 전혀 미치지 못하는 것.
10분 남짓 걸어 올라가자 유치원이 나타났다. 부모가 일하는 동안 오후 5시까지 운영되는 이런 시설은 호시냐 파벨라에만 10여 곳이 있다.
문제는 그 이상의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시피 하다는 것. 우리와 물가가 비슷하거나 싼 브라질이지만 유독 책값만큼은 두 배 이상 비싸다. 브라질의 성인 문맹률은 16.7%. 파벨라 주민의 80%가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직업도 없다.
리우데자네이루=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 범죄 물리친 달동네 케이블카 ▼
마약 천국이던 콜롬비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이 집권하며 마약조직 및 반군과의 강력한 전쟁을 선포한 2002년부터 살인사건과 납치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한 것. 우리베 대통령은 올해 5월 대선에서 62%라는 사상 최고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콜롬비아의 지방 도시들도 범죄와의 단절을 위한 개혁 움직임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수도인 보고타 서북쪽으로 250km 떨어진 메데인도 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둔 곳이다.
메데인의 코무나스 지역은 과거엔 마약을 거래하는 범죄단체의 전면전과 살인청부로 얼룩졌다. 그러나 메데인 시가 5년 전 추진한 ‘메트로 케이블카’ 사업이 지형을 바꿔놓았다. 외부와 단절된 곳이 개방되면 범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는 구상이 적중한 것.
2004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케이블카는 산동네의 범죄를 줄인 일등공신이었다. 1100페소(약 500원)에 불과한 지하철 비용만 지불하면 공짜로 탈 수 있는 케이블카는 지역 주민들이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접근성도 높여 주었다.
케이블카의 산동네 종착역인 산토도밍고 역 인근 주민들은 이제 평화를 만끽하고 있다. 역 인근엔 은행과 각종 상점이 들어섰고 노점상도 늘어났다. 이곳에서 46년간 거주한 마리아 소피아 라라(55) 씨는 “거의 매일 발생했던 총격전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마저 두려워 찾지 못하던 산동네에선 이제 과거의 폭력조직원 5000여 명이 직업교육을 받으면서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메데인=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