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없는 중미의 강소국 코스타리카를 가다
[조선일보 2006-11-13 03:01]
문맹률 4% ‘수준높은 티코’<코스타리카 사람> 덕분에 잘달려
자유무역지대엔 외국기업 공장이 95%… 인텔도 입주
軍備 대신 사회보장·교육투자로 정치·경제 안정시켜
[조선일보]
군대가 없는 영세중립국으로 ‘미주대륙의 스위스’라 불리는 곳. 100년이 넘는 민주주의 전통과 착실한 경제성장 덕분에 ‘중미의 우등생’으로 꼽히는 나라. 탄탄한 사회 안전망 덕에 평균 수명은 중남미 최고, 영아사망률은 최저인 나라…. 인구 400만의 소국(小國) 코스타리카는 갖가지 ‘진기록’으로 도착하기 전부터 호기심을 자아냈다. 하지만 수도 산호세 공항에 내려보니 이 도시의 첫 모습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지진대(帶)라서인지 고층 빌딩은 보이지 않았고, 집이며 거리도 첨단이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성장 견인차 ‘자유무역지대’
다음날 정부 관계자 안내를 받아 둘러보니 이 티코(코스타리카 사람)의 나라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산호세에서 서쪽으로 10㎞쯤 떨어진 에레디아주. 만국기와 함께 ‘메트로 파크’란 표지판이 서있는 공단 입구에 들어서자 말끔한 외양의 공장과 오피스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유무역지대’(Zonas Francas). ‘바나나 공화국’을 첨단 수출기지로 탈바꿈시킨 주 엔진이 그곳에 있었다. 입주 기업들은 소득세 면제 등 각종 세제 혜택을 누린다.
그 가운데서 돋보이는 기업. 15만7000여평에 들어찬 공장 위에 푸른색 ‘인텔’(intel) 영문 로고가 우뚝했다. “1998년 이 거물 기업이 마이크로 프로세서 중남미 생산 기지를 이곳에 설립했을 때는 세계가 놀랐지요.” 경제부 중소기업국(局)의 라파엘 라미레즈 국장은 “15개 첨단기술업체들이 동반 투자하는 등 파급 효과는 엄청났다”고 했다.
‘울트라 파크’ ‘글로벌 파크’ 등 다양한 이름의 ‘공단’은 이 인근에만도 여럿 있고, 전국에는 11곳이 있다. 단지마다 많게는 50~60개 공장이 입주해 있다. 이 중 95%가 외국기업들로 코스타리카 수출의 53% 이상을 차지한다. 라미레즈 국장은 “4만명이 넘는 이곳 직원들 임금은 외부 업체들보다 평균 25% 높다”고 말했다.
◆시기별로 정부 리더십이 주효
외국 기업들은 왜 이곳으로 향했을까. ‘기적’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우선 중미에서는 이례적인 정치·사회 안정을 들었다. 이 지역의 평화는 유서 깊다.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 총독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총 한발 쏘지 않고 독립을 얻을 수 있었다. 국민 대다수(94%)가 스페인계이거나 약간의 혼혈계라는 점도 인접국에 비해 갈등이 적은 요인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한결같이 1949년 군대 폐지가 큰 획을 그었다고 말한다. 이곳 언론인 로디리고 디아스씨는 “군사비를 아껴 교육과 사회보장 분야에 투자할 수 있었다”면서 “교육 기회를 통해 안정적 중산층이 생겨났고 정치 안정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 다음으로는 교육 투자에 따른 우수 인력 확보. 티코의 문자해독률은 96%로 미국 수준이다. 코스타리카대학의 란달 아르체 교수는 “영어에 능한 IT 인력이 풍부하다 보니 미국 기업들의 주요 ‘니어-소싱’(Near-Sourcing·가까운 곳에 일감을 떼주는 방식)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리더십도 시기별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60~70년대 다른 중남미와 마찬가지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추구했던 코스타리카는 1980년대 초 외채 위기를 겪고 난 후 1986년부터 수출 주도형 산업화로 전환했다.
◆미국과 FTA 문제 논란
현안은 미국과 중미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CAFTA) 체결 문제. 이미 코스타리카는 과테말라·엘살바도르·니카라과·온두라스 등 다른 중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CAFTA에 서명을 마쳤지만 의회 비준 과정에서 답보 상태다. 코스타리카대학 부설 경제학조사연구소의 후스토 아길라 소장은 “미국의 무역 비중이나 다른 나라의 경쟁조건 등을 감안할 때 더 늦출 수 없는 숙제”라고 말했다.
(산호세=전병근특파원 bkjeon@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