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대륙까지 넘어 온 한류 바람
한국문화의 한류 현상이 일본, 중국, 동남아를 휩쓸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붐 현상은 같은 아시아인의 정서, 또는 비슷한 문화권에만 기반한 것은 아니다.
아직 한류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부족하지만 최근, 우리하고는 문화교류가 일천한 중남미 대륙에서도 한국문화에 대한 호기심, 구체적인 실례로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2006년 10월, 베네수웰라에서 “겨울연가”가 방영되어 현지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처럼 그동안 멕시코, 페루, 칠레, 파라과이 등지에서는 한국드라마나 영상물들이 방영되어 한국문화를 알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겨울연가 DVD판매 스페인어 선전물
한국과는 지리적, 정서적으로 가장 먼 국가인 아르헨티나에서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2003년에 현지 극장가에서 영화 “집으로”는 서로 다른 문화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관객들에게 눈물 및 감동을 선사하였고, 올해 초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는 현지 극장가에서 개봉되자마자 현지 언론의 센세이션 및 영화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9월 중순 일주일 넘게 계속된 ‘임권택 영화 회고전’에는 아르헨티나인 관객들이 몰렸다.
양국간 프로그램 교환통해 문화 이해 필요
이런 현지의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방송연수센터)이 주관한 중남미시장개척단이 11.1일부터 11.4일까지 4일간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 한국방송 영상콘텐츠의 중남미 진출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관계자와 KBS 미디어, MBC, SBS 프로덕션, EBS(LA), CJ Entertainment 실무급 팀장 및 담당자 등은 아르헨티나 체재중 현지 방송전문가와의 간담회, 그리고 개별 TV 방송을 방문, 양국 간의 문화콘텐츠 교류에 대한 의견 교환 및 향후 한국의 문화콘텐츠 수출 및 판매를 위한 접촉 활동을 벌였다.
임권택 영화제를 알리는 기사.
한국영상산업의 현지진출을 주제로 한 간담회에서 아르헨티나 방송전문가는 한국 방송관계자들에게 아르헨티나인 들이 선호하는 장르가 유머, 드라마, 로망스, 액션, 서스펜스 중에서 어떤 장르로 접근해야 시청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 인식하라고 조언하였다. 그리고 조급하게, 그리고 단기간에 한국방송콘텐츠를 판매하거나 수출할 생각은 버리고, 대신 문화교류라는 큰 대의명분하에서 양국이 서로를 이해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길이 급선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것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한두 개의 한국방송 콘텐츠의 방영이나 진출은 성공하겠지만 미래는 보장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번 방문단이 접촉한 현지 TV방송의 구매 및 수출담당 등 방송 관계자들 역시 한국문화 콘텐츠가 현지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임해주기를 한결같이 바라고 있다.
Telefe(채널11) 방송 같은 경우는 외국의 문화콘텐츠 수입보다는 자국의 문화콘텐츠를 아시아에 수출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표명하였지만 만약 동 방송의 콘텐츠가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우선이라고 언급하면서 한국 진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국영방송인 ATC(채널7)는 2001년의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의 여파로 방송국의 재정 사정이 썩 좋지는 않지만 향후 양국 간의 프로그램 교환에는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America(채널2) 방송은 한국에서 콘텐츠를 제공해주면 동 방송국에서 한국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겠다는 입장표명을 하였다.
이런 현지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방송 콘텐츠의 판매보다는 한국문화의 교류나 보급이 우선 전제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여 문화상품을 판매나 수출에만 목적을 둔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성과는 얻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에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편 우리의 문화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기에 앞서, 현지의 문화 콘텐츠 시장에 대한 인식도 필요하다. 중남미는 식민역사, 인종간의 혼합, 빈부격차, 사회적 격변 등 문화의 복합적인 현상으로 인하여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드라마(현지이름으로는 TV Novela)가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중남미 전역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는 단연 아르헨티나의 한 방송사에서 만든 신데렐라 이야기 플로시엔티(Floricienta)이다. 이런 인기 있는 드라마를 한국에서 수입해서 우리가 먼저 중남미 문화 콘텐츠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것이 상호교류의 폭을 확대해 나가는 방법이고, 장기적으로 비즈니스다.
한국방송영상콘텐츠 중남미시장 개척단이 아르헨티나 방송 시장 현황에 대한 현지 방송전문가인 알베르토 만쿠소(Alberto Mancuso, 악시온 방송그룹 사장겸 한국 아리랑 TV 에이전트)의 특강을 경청하고 있다.
초기 일정부분 경비 부담 감수도 고려해 볼만
한국방송 콘텐츠 분야의 미개척지인 중남미 시장을 돌파하려면 여러 다양한 전략과 방법이 있겠지만 초기에는 한국 상품의 판매 전략보다는 방송교류 형태로 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는 한국방송물을 그들에게 제공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방송 같은 경우는 한국 측에서 콘텐츠를 제공해 준다면 한국의 방송물 방영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국제적 방송관례상 더빙 같은 경우는 수혜자 측에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현 아르헨티나 방송국들의 열악한 사정은 이것마저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큰 비용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향후의 한국 방송콘텐츠의 중남미 시장 진출을 위해서 초기의 일정부분 드는 경비도 우리가 부담하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한국방송물 방영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방송국에 정부차원에서 저렴한 예산을 들여 한국의 방송드라마를 제공한다면 미래의 한국문화 콘텐츠 시장의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한국 및 한국인의 대현지사회 홍보에도 커다란 성과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한국 문화의 한류현상이 일본, 중국, 동남아 등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이국문화 선호(Exoticism)를 넘어, 한국 문화가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갈등, 애정, 조화의 문제가 인간세계라면 어디든지 존재하는 보편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중남미에서도 결코 예외가 아닌 것이다.
서성철 주아르헨티나 홍보관 (scsuh@hotmail.com) | 등록일 : 2006.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