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관리 "쿠바 외무 방문은 얼음 깨기 위한 것"
오는 17~19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개최되는 제5회 미주정상회의를 통해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 문제가 거론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브라질 역할론이 갈수록 힘을 받고 있다.
9일 일간 에스타도 데 상파울루 등 브라질 언론은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무장관의 브라질리아 방문 사실을 전하면서 미국-쿠바 관계 개선을 위해 브라질 정부가 상당한 수준의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익명을 요구한 브라질 외무부 관리의 말을 소개하면서 "로드리게스 장관의 방문은 (미국-쿠바 간의) 얼음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취임 후 브라질리아를 처음 방문한 로드리게스 장관은 전날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과 셀소 아모링 외무장관을 만나 미주정상회의에 관해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브라질 정부는 전날 회동 내용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하지 않고 있으나 브라질리아 외교가와 브라질 언론은 미주정상회의에서 쿠바 문제를 둘러싸고 제기될 논란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EFE 통신은 전날 룰라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미국-중남미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미국-쿠바 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고 보도한 바 있다.
통신은 특히 룰라 대통령이 지난달 중순 오바마 대통령과의 워싱턴 정상회의를 언급하면서 "미국 정부가 이른 시일 안에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를 제거하거나 최소한 완화할 것으로 본다"는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룰라 대통령은 미주정상회의에서 어떤 식으로든 쿠바 문제를 거론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동안 강조해온 대로 자신이 미국-쿠바 간의 대화를 직접 중재하지는 않고 상호존중의 원칙 아래 양국관계가 정상화돼야 한다는 정도의 발언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브라질의 또 다른 유력 일간 폴랴 데 상파울루는 미주정상회의에서 쿠바 제재 해제를 위한 중남미 좌파블록의 공세가 거세게 제기될 것으로 내다봤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미주정상회의에서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결의안 채택을 제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특히 좌파 경제블록인 '미주(美洲)를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의 이름으로 결의안 채택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ALBA는 미국 주도의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창설안에 맞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주도로 2004년에 결성돼 2006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으며 베네수엘라, 쿠바, 볼리비아, 니카라과, 온두라스, 도미니카공화국 등이 회원국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차베스 대통령이 힘을 실어줄 것은 확실해 보인다. 쿠바 제재 해제 촉구 결의안을 '반(反) 식민주의' '반제국주의' '반신자유주의'의 실천으로 삼는데 두 사람이 어렵지 않게 목소리를 맞출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바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좌파블록의 움직임에 대해 부정적인 해석을 내리는 견해도 있다.
브라질의 역사학자인 루이스 베르나르도 페리카스는 "쿠바 문제는 차베스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있지 않으며, 쿠바 정부도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공세 확대를 꺼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세 미겔 인술사 미주기구(OAS) 사무총장도 "모랄레스 대통령이 내세운 결의안 채택 주장이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면서 결국은 브라질과 미국의 입장이 쿠바 문제를 다루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주정상회의는 오바마 대통령이 중남미 지역 정상들과 첫 대면을 하는 자리가 되며, 미국-쿠바 관계는 물론 미국과 베네수엘라ㆍ볼리비아 등 좌파 정권과의 화해 가능성을 타진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브라질 언론은 강조했다. 쿠바는 중남미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참석하지 않는다.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fidelis21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