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 실험’ 3선 성공 “21C 사회주의 열렸다”
[경향신문 2006-12-04 18:05:31]
고유가에 편승한 포퓰리스트인가, 남미 번영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선구적 사회주의자인가.
중남미 반미연대의 선두 주자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 3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3번째 대선 승리를 거뒀다. 베네수엘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78%의 개표가 진행된 상황에서 차베스 대통령이 61%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야당의 마누엘 로살레스 후보는 38%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차베스는 선관위 발표 직후 카라카스의 대통령궁 발코니에 나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베네수엘라 사회주의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로살레스 후보도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오늘 우리가 패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그러나 베네수엘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98년 이후 8년간 베네수엘라를 통치해온 차베스는 이날 승리로 6년의 임기를 보장받아 오는 2012년까지 총 14년간 권좌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일부에서는 헌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차베스가 이번 승리를 바탕으로 영구집권을 노릴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차베스는 정제되지 않은 언사와 증오에 가까운 반미 표현, 급진적 경제개혁으로 국제사회에서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국내에서 열광적 지지를 받는 이유는 베네수엘라의 폭발적 경제발전과 차베스가 ‘21세기형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서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남미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9%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인 데 이어 올해에는 두자릿수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고유가에 힘입은 ‘페트로달러’는 은행 수입을 지난 1년간 84%나 늘려놓았다. 지난 1일 베네수엘라 증시 지수 증가율이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그의 당선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의 높은 득표율은 차베스식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의미한다. 그는 막대한 석유판매대금을 바탕으로 지난 2년간 교육·보건복지 부문에 대한 개혁에 커다란 성과를 거뒀고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AP통신이 발표한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 국민 전체의 60%가 차베스의 국정운영과 경제정책에 지지를 표명했다. 특히 교육(75%)과 보건복지(74%) 부문에서 차베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차베스 이전의 엘리트 신자유주의 정권이 빈곤층을 양산한 것과는 달리 차베스는 소외 계층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으로 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예수는 최초의 사회주의자이며 가롯 유다는 최초의 자본주의자”라는 차베스의 선동적 발언은 이 같은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의 수석 경제연구원을 지낸 호세 게레라는 “정부 주도의 베네수엘라식 경제는 차베스 통치하에서 근근이 버텨나가는 것이 아니라 번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차베스의 앞길이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서민들의 열광적 지지와는 반대로 증산층 이상의 보수세력 사이에는 차베스의 통치 스타일에 대한 경계와 거부감이 팽배해 있는 상태다. 지난 대선때와 마찬가지로 서민표가 차베스에게 집중됐다는 것은 여전히 베네수엘라의 빈부 격차와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비(非)중동 최대 산유국 베네수엘라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그의 집권 초기보다 6배나 오른 높은 유가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정치 수명이 최근의 고유가 추세에 의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때문에 경제전문가들은 “막대한 석유 수입을 바탕으로 한 직접적 경제지원은 장기적으로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차베스식 사회주의가 일자리 창출과 경제 펀더멘털 구축 등 중장기적인 비전을 준비하지 않으면 일거에 추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차베스의 사회주의 실험을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남미에 만연된 신자유주의적 환상을 깨고 새로운 게임의 룰을 제시한 첫번째 지도자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유신모기자 sim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