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빛난 칠레 경제..미리 대비한 덕
2009.05.28 01:00
칠레 경제가 세계적인 경기하강에서도 불구하고 다른 신흥시장 국가와는 달리 굳건함을 유지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구리 등 원자재 값 급등으로 많은 돈이 들어오던 호시절에 향후 어려운 시기가 올 것에 대비해 재정을 비축해 두는 신중한 정책을 편 덕분이다.
몇년 전 금속 가격이 4배 수준으로 급등하던 때에 세계 최대의 구리 생산국인 칠레는 엄청난 수입을 올렸지만 이를 흥청망청 쓰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칠레 정부는 구리 값 급등으로 풍부해진 자금이 대출과 소비 지출 거품을 일으켜 문제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자금을 대규모로 비축하는 정책을 도입했고, 그 중심에는 안드레스 벨라스코(48) 칠레 재무장관이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 벨라스코 장관이 주도한 칠레의 정책을 소개하면서 그 덕분에 칠레가 세계적인 경제침체에서도 스스로 경기 회복을 할 수 있는 입지에 있고, 어떤 은행도 구제할 필요가 없는 든든한 위치에 서게 됐다고 보도했다.
하버드대 교수였던 벨라스코 장관은 2006년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정부에 입각했다.
당시는 구리 가격이 급등하던 때로 벨라스코는 구리 판매에 따른 막대한 수입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한 금융, 부동산, 소비지출 거품이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것을 우려했다. 또 환율 가치의 상승이 수출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도 걱정했다.
이는 칠레가 1980년대 초에 원자재값 급락으로 위기에 취약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벨라스코 장관은 이런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 위해 2006년에 연간 예산을 현재의 구리 값이 아니라 향후 10년간 평균가격에 기초해 짜도록 하는 것의 법제화를 추진했다. 예산에 책정된 구리 가격 이상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모두 해외에서 관리되는 비축펀드에 넣도록 했다.
2007년의 경우 예산에 반영된 구리값은 파운드당 1.21달러였지만 시장에서 거래되는 실제 가격은 3.23달러에 달했고, 이로 인한 초과 재정 수입분은 60억달러에 이르렀지만 이 돈은 모두 비축펀드로 들어갔다.
비축펀드 자금이 국내총생산(GDP)의 15%를 넘는 200억달러에 달하면서 이를 깨서 쓰자는 여론의 압력과 시위도 벌어졌지만 벨라스코 장관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 덕분에 칠레는 세계 경제위기 이후 구리 값이 50%나 떨어지는 등 원자재값 급락으로 아르헨티나나 러시아 등 다른 신흥시장 국가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칠레는 충분한 자금으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공사업 프로젝트나 기업에 대한 감세, 광산 투자 등 대규모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 칠레의 경기부양 규모는 GDP의 2.8%에 달해 경제 규모와 관련한 경기부양 비중으로 볼 때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신문은 다른 나라들의 GDP가 급감하는 것과 달리 올해 칠레의 GDP는 0.5% 감소에 그칠 것으로 경제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다면서 칠레는 호시절에 외채도 갚아 지금은 순채권국이 됐다고 전했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ju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