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南美 "경제가 최우선”… 통합 논의 급물살
◇9일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열린 남미국가공동체(CSN) 정상회의에 참석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왼쪽)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에서 남미 국가들 간 경제협력 구상을 밝히고 있다. 코차밤바=AP연합뉴스
남미 ‘대선의 해’로 불렸던 2006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볼리비아를 시작으로 지난 3일 베네수엘라까지 ‘좌파 도미노’를 확인한 한 해다. 좌파 물결의 정체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념’이 아니라 ‘경제’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자원 소득의 공정 분배’를 내세워 민심을 파고드는 데 성공한 좌파 지도자들이 최근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에너지 연대를 통한 남미 통합’ 논의를 서두르고 있다.
경제를 내세워 정권을 잡은 이들 지도자가 이제는 세계 경제질서에서 살아남을 현실적 대안을 찾고,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단일 경제블록 논의=9일 막을 내린 제2회 남미국가공동체(CSN) 정상회의를 계기로 남미 지역의 양대 경제블록인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 안데스공동체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노력이 본격 추진될 전망이다. 메르코수르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 5개국이, 안데스공동체는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등 4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CSN 정상회의 주최국인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폐막식에서 5년 이내에 유럽연합(EU)식 역내 경제공동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CSN 12개국 정상들은 남미 경제를 통합하고, 장기적으로는 남미 의회 창설까지 논의할 상설기구(대통령보좌관 협의체)를 설치키로 합의했다. 이를 통해 에너지원 확대와 전력 공유 활성화, 수송망 개선, 금융망 연계 확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방침이다.
이날 합의는 남미 국가들이 메르코수르와 안데스공동체로 분리된 데다 이들 기구마저 제 역할을 못한다는 위기 의식에서 비롯됐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역내 2개 공동체는 모두 죽은 상태”라며 새로운 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경제협력안 협의 봇물=CSN 정상회의에서는 경제공동체 설립 외에도 각종 협력안들이 쏟아졌다.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당선자는 ‘파나마 운하’를 대체할 물류 수송망 프로젝트를 내놨다. 20억달러를 투자하면 아마존강과 육로를 연계해 브라질 아마존 지역과 에콰도르의 태평양 연안을 연결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남미 최대 석유수출국인 베네수엘라는 에콰도르에 대규모 정유 시설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고, 브라질은 천연가스 수출국인 볼리비아에 투자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모든 국가에 고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각국의 국책은행들이 참여하는 재원조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언급, 중남미 은행 창설 논의도 있었음을 시사했다.
역내 공용화폐를 창설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코레아 대통령 당선자는 룰라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에콰도르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중남미 지역의 화폐를 단일화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통합화폐 창설’을 제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화폐 통합이 이뤄지면 미 달러화 공식 화폐 정책을 폐기할 수 있다”고도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각국 지도자들은 정상회의 이전에도 개별적으로 연쇄 회동을 갖고 합의물을 속속 공개했다. 룰라 대통령과 차베스 대통령은 7일 브라질리아에서 메르코수르의 정치·사회적 기능 확대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메르코수르 구축’에 합의했다. 중남미 통합 프로젝트에 가속도를 붙이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통합의 원동력은 에너지=룰라 대통령은 향후 남미 통합 논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동력으로 ‘에너지 공동개발’과 ‘인프라 확충 노력’을 지목했다. 에너지 공동개발을 통해 소득 재분배와 환경보호, 소외계층 해소 등 남미의 고질적 문제들을 해결해 남미 전체의 발전을 이끌어내자는 주장이다. 그는 “1950년대 석탄과 철강이 유럽통합의 촉매제가 됐던 것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가장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분야는 남미대륙 종단 천연가스 수송관 건설 프로젝트다.〈그래픽 참조〉 룰라 대통령과 차베스 대통령은 수송관 건설을 조기에 착공하자는 데 합의하고, 내년 1월 양국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키로 했다. 최대 230억달러가 투입될 수송관 건설 사업이 본격화될 경우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국가들은 직접적인 혜택권에 들어가며, 에너지를 매개로 한 역내 통합 움직임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현일 기자
2006.12.11 (월)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