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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 넘치는 남미의 ‘뚱보’ 들…존재는 아름다웠다 (6.23)
관리자 | 2009-06-24 |    조회수 : 1403
라틴 거장 보테로 30일부터 덕수궁미술관서 대규모 회고전

화려하고 정열적인 원색
풍만한 인체양감 묘사
낭만 가득한 풍자 신선

모든 게 통통하다. 아니 통통하다 못해 풍만하다. ‘날렵한 V라인’이 대세인 시대에 역설적인 조형세계로 오히려 ‘거장’으로 칭송받는 작가가 있다. 콜롬비아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77)다. 인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감성을 환기시킴으로써 ‘이 시대 살아있는 거장’으로 꼽히는 보테로의 회화와 조각이 서울에 온다.

마치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은듯 둥글게 부풀려진 인물들이 대형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다. 무표정한 것 같지만
하나같이 유머러스하고, 여유롭다. 현존하는 라틴아메리카 작가 중 ‘최고’로 꼽히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은 이렇듯 풍만하고 통통한 인물로 일가를 이루고 있다. 마치 “비실비실한 말라깽이들이여 가라, 여기 뚱보들이 있다”고 외치는듯 뚱보들의 유쾌 통쾌한 세계를 거침없이 보여준다. 뚱보들이 이토록 매력적이고 귀여우며, 사랑스럽다니…. 그의 작품을 보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감돈다.

그 보테로가 서울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은 오는 30일부터 9월 17일까지 80일간 ‘보테로, 그 거대한 세계’전을 개최한다. 본격적인 그의 한국 내 회고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에는 인체에 대한 남다른 해석과 감성으로 명성이 높은 보테로의 초기작에서부터 최근작이 망라된다. 즉 1960년대부터 2008년까지 전(全)시기 작품 92점(회화 89+조각 3점)이 4부로 나뉘어 선보여진다.

보테로는 콜롬비아 메델린에서 가난한 행상의 세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나 16세까지 투우사 양성학교를 다니며 독학으로 그림을 연마했다. 부친은 그가 네살 때 세상을 떠나 가정형편은 더없이 척박했지만 그림에의 열정을 누를 수 없어 19세에 첫 개인전을 열었고, 그 돈으로 유럽으로 건너갔다. 이후 유럽의 유명 미술관에서 지오토, 라파엘로, 마사초의 볼륨감있는 인물화를 접하고 큰 영감을 받아 지금의 통통한 인물을 창출해내기에 이른다. 현재 이 작가는 파리를 중심으로 뉴욕, 피에트라산타(이탈리아) 등 전세계 4곳에 스튜디오를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보테로는 비정상적인 형태감과 화려한 색채로 한 번 보면 누구나 잊지 못할 회화세계를 보여준다. 어찌보면 유치할 수도 있지만 그는 ‘뚱보’를 등장시킨 인물화를 통해 인간의 천태만상을 꾸밈없이 드러낸다. 인물이나 동물은 모두 실제보다 훨씬 살찐 모습으로 묘사되며, 눈 코 입, 그리고 손발은 현저히 작고 올망졸망하게 그려져 비만이 더욱 강조된다. 더욱이 그는 중남미지역의 정치 사회 종교적 이슈들을 시니컬한 인물을 내세워 지극히 자연스럽게 부각시켜 일면 사실주의적 경향도 엿보게 한다.

보테로의 그림은 ‘인체 양감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불린다. 현란한 원색을 사용해 대상의 풍만한 형태감을 강조하며 화면을 구조적으로 구성한 그의 화풍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형태를 추구한 입체파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의 하나다. 물론 20세기 중반 이후 마른 몸매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며 풍만한 신체 형태는 거의 죄악시되고 있는 상태에서, 보테로의 뚱뚱한 인체는 여성 신체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신랄하게 풍자한 것기도 하다. 특히 보테로가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1957년 무렵에는 무의식과 의식, 영감에 기반을 둔 추상표현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여서 확고한 형태감을 추구한 보테로의 작품은 “촌스럽다”,“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악평이 쏟아졌다. 때문에 외톨이로 몰렸지만 그는 자신만의 올곧은 화풍을 밀어붙이며 개성적 조형세계를 창출했다. 즉 불꽃 튀는 열정과 인간미를 간직한 라틴사람들과 라틴사회의 진솔한 모습을 표현하려면 시대적 트렌드와 무관하게 독자노선을 걸어야 한다고 결심한 것. 

이후 그는 오늘날까지 50년 넘게 통통한 인물상을 그려왔다. 보테로는 “나는 모든 걸 그릴 수 있길 바란다. 마리 앙투아네트까지도. 그러나 나는 항상 내가 그리는 모든 것에 라틴의 정신이 깃들길 바란다”고 되뇌고 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우는 얼굴, 찌푸린 얼굴, 측면상 등 다양하나 얼굴에선 도무지 감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무표정한 얼굴은 대중의 병리학적 이상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혼란스런 사회로부터 자신을 은폐하기 위한 위장술로도 해석된다. 또 고대신화라든가 유명문학 속 인물을 등장시켜 정치적 권위주의를 예리하게 풍자하기도 한다.

보테로의 작품은 이렇듯 다분히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소풍 나온 남녀, 가족, 서커스, 투우 등을 그린 그림들은 기록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으나 딱딱하기 보다는 푸근하고 따뜻하다. 그 까닭은 작가 자신이 라틴사람으로서 라틴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에는 따뜻한 서정과 삶에 대한 은유가 담겨 있어 관객에게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직설적으로 고발한 그림들보다 더욱 의미심장하고 설득력이 있게 다가온다.

한편 보테로는 조각에서도 두각을 보여왔다. 조각의 경우도 회화에서처럼 풍성한 양감을 강조했던 그는 탁 트인 공공장소에 파워풀하면서도 거대한 조각을 세워 각광받았다. 특히 1992년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열었던 거리조각전은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고, 이후 그의 조각은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광장 등에 세워져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는 “보테로는 확고한 형태감과 충실한 묘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인간은 화면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공간 속에서 확장하며 공간 자체를 넓히는 자율적 존재”라며 “보테로의 인간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공간과 끊임없이 조응하고 있다”고 평했다. 전시와 함께 라틴영화제, 라틴댄스 공연및 음악회, 작가와의 대화(30일) 등 부대행사가 풍성하게 곁들여진다.

헤럴드경제 이영란 기자 yr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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