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공동통화 '수크레' 내년부터 전격 도입
쿠바•베네수엘라•볼리비아•에콰도르•니카라과 등 중남미 좌파 국가 모임인 '미주(美洲)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ALBA)'이 내년부터 회원국 간 무역 결제에 달러를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AP통신이 17일 보도했다.
ALBA의 9개 회원국 정상들은 16~17일 볼리비아 중부 코차밤바 시에서 회의를 갖고 내년 초부터 회원국 공동 통화인 '수크레(SUCRE)'를 도입해 무역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수크레는 일종의 가상 통화로 실제 화폐가 발행되지는 않지만, 전산 결제를 통해 무역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수크레를 정해진 환율에 따라 각 회원국 통화로 인출할 수 있다. ALBA 회원국들은 장기적으로 수크레를 유로화 같은 단일 통화로 발전시키고, 미국•유럽연합(EU) 등 비(非)회원국과의 역외 무역 결제 수단으로도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단일 통화로의 채택과 역외 결제 도입 시기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수크레는 에콰도르가 2000년 초까지 사용했던 통화의 이름으로 19세기 남미의 독립투사였던 호세 안토니오 수크레(Scure•1795~1830년)에서 유래됐다. 그러나 에콰도르는 2000년부터 수크레를 폐지하고 미국 달러화를 자국 통화로 사용해왔다.
에보 모랄레스(Morales) 볼리비아 대통령은 '수크레'를 일정 기간 가상 통화로 사용한 뒤, '파차(Pacha)'라는 이름의 새 단일 통화를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파차'는 볼리비아 말로 '땅'을 의미한다.
ALBA는 2004년 12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Castro) 당시 국가평의회 의장과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Chavez) 대통령 주도로 결성됐으며, 볼리비아•니카라과•에콰도르•온두라스•도미니카공화국 등 남미의 좌파 9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한편,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17일 ALBA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기자들에게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이란•러시아 등이 석유 결제에 달러를 사용하지 않는 방안을 제안했다"며 "베네수엘라는 이 제안을 환영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일보 김민구 기자 roadrunne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