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온두라스 대선 좌. 우파 1승씩. 중도성향 강화
지난 수년간 좌파 일색이던 중남미 지역의 정치판도에 변화가 올 것인가?
중남미 지역에서 29일(현지시간) 우루과이와 온두라스 대통령 선거를 시작으로 내년 말까지 대선과 총선이 잇따를 예정인 가운데 그동안 좌파의 위세에 눌려있던 우파 정치세력의 재기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우루과이에서는 좌파의 호세 무히카 후보, 온두라스에서는 우파 성향의 포르피리오 로보 후보가 승리하면서 좌ㆍ우파가 1승씩 나눠가진 셈이 됐다.
우루과이ㆍ온두라스에 이어 다음 달 6일에는 볼리비아에서 대선과 총선, 13일에는 칠레에서 대선이 실시된다. 내년에는 2월 7일 코스타리카 총선, 3월 14일 콜롬비아 총선, 5월 30일 콜롬비아 대선이 예정돼 있고, 이로부터 5개월 뒤인 내년 10월에는 중남미 최대국 브라질에서 대선이 실시된다. 내년 말로 예정된 베네수엘라 총선은 아직 구체적인 날짜가 결정되지 않았다.
4년여 전에 실시된 선거에서는 좌파가 중남미 대륙을 쓰나미처럼 휩쓸면서 우파 진영에서 살아남은 인사는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이 거의 유일했다.
그러나 중남미 정치 전문가들은 앞으로 치러지는 선거에서 우파의 부분적인 승리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최소한 3~4개국에서 우파가 대선이나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볼리비아 대선과 총선은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과 집권 사회주의운동당(MAS)의 압승이 점쳐지면서 좌파정권 연장이 유력하다.
반면 칠레 대선은 기업인 출신의 우파 야당 후보가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앞서는 데다 집권 좌파연합인 "콘세르타시온"에서 2명의 후보가 출마하면서 거의 20년 만의 정권교체가 예상되고 있다.
우파가 강세인 코스타리카 총선과 콜롬비아 총선 및 대선, 남미 좌파의 핵심축인 베네수엘라 총선은 현 집권세력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
가장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될 브라질 대선은 아직 결과를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파 성향의 야당 후보가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우세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집권 노동자당 후보로 내세운 여성 각료가 맹추격하고 있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향후 선거에서 우파가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둘 경우 중남미 역내 역학관계에 적지않은 변화가 초래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쿠바, 니카라과 등이 그동안 "좌파 축"을 형성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우파 축"이 구축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 미국 워싱턴 소재 연구기관인 "미주대화"의 피터 하킴 소장은 "좌파가 집권하고 있는 일부 국가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중남미 지역에 "우파 축"이 형성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좌파의 입김이 약화될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좌파가 절대 강세이던 중남미 지역에서 "우향우" 경향이 뚜렷해지며 정당 간 이념적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우루과이 대선에서 승리한 무히카 후보가 "내 모델은 룰라 대통령이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중도 노선을 내세운 사실에서 이 같은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남미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중도와 좌파 노선을 택한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엇갈린 경제상황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브라질은 예상보다 일찍 경기 침체를 탈출해 내년부터 고성장세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베네수엘라는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쿠바, 니카라과 등 좌파 성향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현재의 중남미 지역 정치 판도를 엄밀하게 좌파와 우파로 양분해 설명하기는 어렵다.
브라질 대선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좌파후보와 우파후보의 대결이라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큰 줄기에서 보면 출마 의사를 밝힌 후보들이 모두 중도좌파로 분류되고 있다.
따라서 중남미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 조짐을 곧바로 좌파의 쇠퇴로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좌파가 여전히 우세를 유지한 가운데 무게중심을 이전보다 조금씩 오른쪽으로 옮기면서 중도 노선을 찾아가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fidelis21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