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브라질은 지금 ‘중국의 바다’
[조선일보 2007-01-11 10:02]
거리마다 상점마다 중국産제품 넘쳐… 무역수지도 3년째 내림세 '赤字눈앞'
7일 낮 브라질 상파울루 시내 중심가의 ‘빈치 트레스 싱쿠’로 들어섰다. 한국의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쯤에 해당하는, 최대 재래식 상권(商圈)이다. 정초 연휴가 끝나고 사실상 새해 첫 주가 시작돼서인지, 평소보다 더 붐볐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사려는 사람은 피부색과 복장이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어느 상점을 가든 거래되는 물건엔 ‘공통점’이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CD, 휴대전화 케이스에서 신발, 가방, 우산, 드라이버 공구, 바퀴벌레 퇴치약에 이르기까지 각 매장은 중국산이 점령했다.
한 대형 액세서리 매장의 사장 K(45)씨는 “미국산이라고 적힌 것도 사실은 중국제”라며, “3~4년 전부터 중국산 비율이 계속 늘어나, 이젠 우리 매장 제품의 95% 이상이 중국제”라고 말했다.
쇼핑객들도 으레 ‘중국산이겠지’라고 생각한다. 잡화점에서 큐빅(cubic) 장식이 달린 손가방을 고르던 에지나(22)씨는 “신발과 옷 모두 중국산을 쓰는데, 값도 싸고 질도 괜찮다”고 했다. 길거리 노점들은 중국산이 말 그대로 ‘평정(平定)’한 지 오래다.
머리핀 같은 웬만한 장신구는 1~3헤알(1헤알은 약 435원). 요즘같이 여름철 스콜(squall·열대지방의 소나기)이 잦을 때에는 5헤알이면 괜찮은 중국산 접이식 우산을 살 수 있다.
남미 대국 브라질을 흔들고 있는 것은 ‘메이드 인 차이나’ 물건만이 아니다. 상파울루 시내 또 다른 주요 상권인 리베르다지. 일본 왕이 기증했다는 연등 모양의 오렌지색 가로등이 늘어선 이 곳은 일본 본토 밖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산다는 지역이다. 이곳도 최근 중국인들에게 속속 자리를 내주고 있다. ‘상하이 반점’ 같은 중국식당, 침술원을 비롯해 대형 중국식품점도 세 곳이나 들어섰다. 이 곳의 대표적인 쇼핑몰 중 하나인 갈레리아 파제도 점포 주인의 상당수가 중국인이다.
39헤알짜리 치파오(원피스 형태의 전통적인 중국 여성복)를 입어보던 나탈리아 호지(21)양은 “몸에도 잘 붙고 예뻐서 일상복으로 입고 다닐 것”이라며 흡족해했다. 가게 점원은 하루 10벌 정도가 나간다고 했다. 중국의 에어 차이나(중국국제항공)도 지난달부터 베이징~상파울루 직항로를 개설했다.
중국산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면서, 브라질의 대(對)중국 무역수지는 3년째 하향세다. 2003년만 해도 대중국 무역에서 23억 달러였던 흑자폭은 작년에 10억 달러로 떨어졌다. 무역 역조(逆調)가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올해 내에 중국과의 무역 적자 폭이 5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은 2009년이면 미국을 누르고, 브라질의 최대 수입국이 된다.
이 탓에, 중국의 브라질 곡물·원자재 특수(特需)로 무역 호황을 누렸던 브라질은 뒤늦게 중국 교역의 손익 계산서를 따지기 시작했다. 언론은 앞다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경고음을 낸다. 중국산 저가 상품과 경쟁해야 하는 브라질의 지방 영세 생산업자들은 사업을 축소하거나 도산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컨설팅회사인 RC의 파비오 실베이라 대표는 “단기적으로는 중국과의 교역이 브라질의 무역수지 개선에 엄청난 도움이 됐지만 장기적으로는 브라질의 두통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파울루=전병근특파원 bkj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