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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포퓰리즘] 아르헨티나 (1.9)
관리자 | 2007-01-15 |    조회수 : 1293
[중남미 포퓰리즘]<하>아르헨티나  
 
[동아일보   2007-01-09 03:01:00] 
 
 
  
[동아일보]
지난해 12월 19일 오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의사당 건물 앞의 광장. 300여 명의 피케테로(피켓 시위대)가 시내 행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부의 자유를 위한 운동’이란 단체의 구성원들은 ‘부를 평등하게 분배하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거머쥐고 있었다.


○ 피케테로가 점령한 도시


‘반정부 성향의 시위일까’ 하는 궁금증부터 들었다. 시민들은 “잘 모르겠지만 십중팔구 반정부 단체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국내 정치 기반 확대를 위해 비제도권 세력인 노조 및 피케테로와의 유대를 강화해 왔기 때문에 시위대는 오히려 ‘친정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플래카드를 손에 든 한 사내를 붙들고 ‘요구 내용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그럼 왜 왔나?” “끝나면 돈을 나눠 준다기에 왔어요. 많진 않지만 짭짤한 수입이 되죠.” 의외의 대꾸였다.


다음 날인 20일 오후 4시경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7월 9일 대로’. 교통 체증이라곤 있을 것 같지 않던 최대 폭 140m의 대로가 차량 정체로 몸살을 앓았다. 타이어를 태우는 검은 연기와 고무 타는 매캐한 냄새가 시내를 뒤덮었다.


피케테로 중 상당수는 정부 지침에 따르는 친정부 그룹들이지만 반정부 시위대도 섞여 있었다. 사방팔방 활보하는 각기 다른 시위대들로 한 나라의 수도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이 피케테로는 아르헨티나 경제 몰락의 피해자들이다. 그런 이들이 이젠 정부 관제 데모와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문제를 관철하려는 정치인들의 돈 몇 푼에 끌려 다니는 처지가 됐다. 심지어 과거 피케테로에 참가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며 ‘체불 임금’을 내놓으라고 악을 쓰는 일부 시위대도 눈에 띄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서방 외교관은 “모두 키르치네르 대통령의 변칙적인 통치 행위 때문이다”라고 비판했다.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피케테로를 동원해 관제 데모를 조종하는 포퓰리스트 정책으로 집권 기반을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이렇듯 피케테로의 시위는 어느덧 아르헨티나의 일상사가 돼 버렸다.


○ 페론의 그늘


“실업자들은 뇨키스, 페론당은 뇨키스 공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난해 12월 18일 에바 페론의 묘지가 있는 레콜레타 공원 앞에서 한가롭게 책을 읽던 클라우디아 코르티나(25) 씨는 페론당의 현재 모습이 아주 불만스럽다는 표정이다. 뇨키스는 감자를 넣어 만든 파스타. 또 ‘게으름뱅이’를 지칭하는 속어이기도 하다.


보카 지역의 상인 블랑카 사바티에르(46·여) 씨는 “에바는 인권을 보호하고 가치 있는 일을 많이 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포퓰리스트의 원조인 후안 페론 전 대통령과 뮤지컬 ‘에비타’로 유명한 그의 아내 에바에 대한 평은 엇갈린다. 하지만 대다수의 서민은 그를 서민과 노동자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한 지도자로 기억한다. 페론당이 받는 인기도 그들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사에서 1949∼74년은 가장 산업화가 활발했고 소득 분배가 잘 이뤄졌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시대의 잔영이 깊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풍요했던 시절은 역설적으로 나라를 ‘속 깊은 골병’이 들게 몰아갔다. 전문가들은 “1976년 군부독재 정권이 아르헨티나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한 개방 정책을 추진한 데다 모든 중남미 국가에 똑같은 처방전으로 제시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무리하게 도입한 것이 경제 추락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개방의 거센 돌풍 앞에 나라가 무기력하게 무너진 데는 이에 앞서 노조와 각종 사회집단의 무분별한 요구를 들어주며 국가의 체질을 약화시켜 온 페론 정권의 과오도 적지 않다.


에바를 좋아한다는 코르티나 씨도 페론주의의 부정적 유산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그는 공원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무직자들을 가리키며 “페로니즘은 조금만 힘들어도 일을 하지 않으려 드는 게으른 정신을 심었다. 페론이 원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며 한숨지었다. 


○ 외채에 신음하는 아르헨티나


20세기 초 세계 5대 경제대국 반열에 들던 아르헨티나.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국 전체에 곡물을 공급하는 식량 생산의 보고였지만 세계 경제가 1차 산업에서 2, 3차 산업으로 옮겨 가는 환경 변화에 제때 대처하지 못한 결과 선진 사회의 낙오자로 전락했다.


국가 간의 투자 및 무역장벽이 높았고 아르헨티나 농산물의 국제경쟁력이 ‘무한대’였던 1940∼70년대 국가의 부를 바탕으로 한 페로니즘 정책을 오늘날 답습하는 것은 경제의 무한 추락을 불러올 수 있다는 위기론까지 제기된다. 키르치네르 정권의 포퓰리스트 경제 관료들은 집권 이후 인위적 가격 통제와 무분별한 정책 집행을 통해 경제를 왜곡함으로써 남미병을 치유하기보다는 오히려 악화시켜 왔다.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 사태의 혼란을 극복하고 지난 4년간 평균 8% 이상의 고도성장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국가부도의 경제 위기가 닥친 2003년 5월 22%의 낮은 지지율 속에 집권한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지금도 관제 데모와 인위적 가격 통제로 대표되는 포퓰리즘 정책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왜곡이 심화돼 온 아르헨티나 경제에 그의 포퓰리즘 정책이 치명상을 입힐 것이라는 우려도 곳곳에서 나온다.


파비오 로드리게스 카피탈 경제연구소장은 “아르헨티나에는 8년마다 경제 혼란이 찾아와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아르헨티나는 결국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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