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포퓰리즘'' 바람 거센 에콰도르를 가다
[세계일보 2007-01-16 19:27]
남미의 빈국 에콰도르에 좌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15일(현지 시간) 취임식을 통해 의회 해산과 대외채무 동결,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등 급진 개혁 공약을 천명해 국가 좌경화를 가속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반미주의자인 코레아 대통령의 취임으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남미권 반미 연대도 외연이 확대되고 결속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라 ! 보라 ! 새로운 라틴아메리카가 탄생하고 있다.”
코레아 대통령이 취임식을 가진 15일 에콰도르 수도 키토의 상징물 적도탑 주변에는 메스티소와 인디오, 백인들이 뒤섞여 새 대통령이 도착하길 기다리면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메마르고 황토 먼지가 날리는 이곳에 오전부터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 군중은 오후가 지나면서 2000여명이 훌쩍 넘어섰다.
전날 코레아 대통령에게 처음으로 추장 지휘봉을 전달했던 인디오들은 전통 의상을 입고 라마까지 몰고나와 꽃잎을 뿌리며 하객들을 맞았다.
축하객으로 방문한 차베스 대통령이 손을 흔들며 입장하자 분위기가 금방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목청이 터져라 “비바 우고 !”를 외쳐댔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들어설 때도 하객들은 환호하며 스타급 대접을 아끼지 않았다. 중무장한 군경들이 다가서려는 군중을 저지하기에 바빴지만 모랄레스 대통령은 갑자기 뛰어든 사람들의 손을 잡으며 빰을 맞대고 비볐다.
금색 대통령 휘장을 오른쪽 어깨에 대각선으로 두른 코레아 대통령이 등장하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그는 카리스마 가득 넘치는 목소리로 군중들에게 물었다. “현재 의회를 해산하고 제헌의회를 만드는 데 반대하는 사람 있습니까.” 단호하고 뚜렷한 반향이 적도탑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 메아리쳐 되돌아왔다. “부패한 의원들을 축출하라 ! 코레아 ! 우리가 있다 ! 좌절하지 말라 !”
이날 오전 의회에서 공식 취임식을 가진 코레아 대통령은 에콰도르의 상징인 적도선 상에서 대통령령으로 의회 해산과 제헌의회 구성을 공표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월급 50% 삭감을 선언하고 각료들도 급여를 깎는 데 전원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또 한번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는 에콰도르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전체 각료 29명 중 8명을 여성으로 채웠다. 각료들은 한 명씩 나와서 남미 좌파 지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락 서명을 했다.
의회에서 적도탑까지 50km 거리 곳곳에는 남미해방운동가 시몬 볼리바르와 에콰도르 자유주의 정치가 엘로이 알파로를 연상시키는 ‘볼리비아노 알파리스타 운동’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던 의회 앞에서는 노인들이 “허리띠 채찍을 놓지 말라” 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나와 의회 해산을 요구하고 있었다.
‘코레아’는 허리띠라는 뜻으로 그의 선거 구호가 “데일 코레아”(그들에게 허리띠를)였다. 부패한 의원들에게 허리띠 채찍을 내리치겠다는 뜻이다.
차베스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 연설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악마에 비유하자 “부시에 비유된 악마가 감정이 상했을 것”이라고 비아냥댔던 코레아 대통령은 이날 하루 종일 미국 관련 발언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는 선거기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및 미군기지 재계약 반대 등 반미 노선을 밝혔지만, 국가를 재건해야 하는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반미주의를 취할지는 미지수이다.
그의 취임식에는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뿐 아니라 칼로스 구티에레즈 미국 상무장관도 참석했다. 카롤리나 팔코니(24)는 “경제학자 출신인 코레아 대통령은 의회 취임연설에서 ‘사우스뱅크(남미연합은행)’를 창설해 남미 이익을 남미가 취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면서 “국민들은 그가 에콰도르 경제를 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키토=한용걸 특파원
ⓒ 세계일보&세계닷컴(ww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