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웠어요 미첼"..남미 첫 여성정상 퇴임
2010.03.12 03:44
대통령궁에서 시민들에게 손 흔드는 바첼레트 대통령 (AFP=연합뉴스)
지지자들, 2014년 대선출마 촉구
남미 지역에서 직접선거로 선출된 첫 여성 정상인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이 11일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퇴임했다.
바첼레트는 1983년부터 아동.공공보건 분야 전문가로 '국가비상사태에 의한 피해아동보호단(PIDEE)'에서 활동했고, 2002년에는 남미 최초로 여성 국방장관이 돼 군사독재의 잔재를 청산하는데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첼레트는 남성 우월주의가 강한 칠레에서 국방장관에 이어 보건장관까지 역임한 뒤 2006년 3월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으며, 집권 후에는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하는 등 칠레 정치.사회 전반에 큰 변혁을 이끌었다.
바첼레트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대통령(1973~1990년 집권)의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후 집권자 가운데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린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취임 이후 교통정책 실패와 실업 문제 등에 봉착하면서 지지율이 한 때 35%대까지 추락했으나 글로벌 경제위기에 무난히 대처하면서 꾸준히 인기를 회복했다.
퇴임을 이틀 앞두고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바첼레트는 강진과 지진해일(쓰나미)로 흉흉해진 민심에도 불구하고 84%라는 경이로운 지지율을 기록했다. 강진 사태 초기 늑장대응에 대한 비난이 제기됐지만 바첼레트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은 전혀 식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바첼레트의 인기는 이날 수도 산티아고의 대통령궁 라 모네다(La Moneda)의 발코니에서 국민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자리에서도 입증됐다.
칠레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와 연호 속에 "대통령, 고마웠어요. 2014년에 다시 만나요"를 외쳤다. 2014년 말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 바첼레트가 다시 후보로 나서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바첼레트의 출마 여부를 점칠 수는 없다. 그러나 바첼레트가 몸담아 온 중도좌파연합 콘세르타시온(Concertacion)에서 뚜렷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을 경우 출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바첼레트 대통령의 퇴임은 20년간 계속된 중도좌파 시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
기독교민주당(PDC), 사회당(PS), 민주당(PPD), 급진사회민주당(PRSD) 등 4개 정당으로 이루어진 콘세르타시온은 민주주의 회복 후 4차례 연속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읽지 못한 채 '식상한 인물'인 에두아르도 프레이(67) 전 대통령(1994~2000년 집권)을 후보로 내세웠다가 20년간 유지해온 헤게모니 붕괴를 자초했다.
콘세르타시온은 독재정권 종식을 내세워 1988년 구성된 뒤 칠레의 현대화와 민주주의 발전,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나 국민들의 강력한 변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훗날을 기약하는 처지가 됐다.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fidelis21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