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200주년 맞는 라틴아메리카
2010.04.15 17:01
내전.독재 혼란 반복…'바나나 공화국' 오명 털기
식민지배 스페인 '미래 협력' 화해 제스처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멕시코, 칠레 등 라틴아메리카 5개국이 올해로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200주년을 맞는다.
1809년 에콰도르가 스페인 치하를 벗어난 것을 시작으로 1810년 멕시코 등 5개 국가가 독립 대열에 합류했고, 1811년에는 우루과이와 파라과이가 지독했던 300년간의 식민지 청산에 나서며 독립을 이뤄냈다.
200주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 속에 12일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기념식에서는 라틴아메리카가 스페인 지배를 벗어난 이후 정치적, 경제적으로 과연 어디까지 와 있는 지에 대한 고민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사를 되돌아보면 독립의 계기는 오랫동안 위세를 떨치던 제국 스페인이 프랑스군에 패한 것에서 비롯됐다.
피억압자의 자발적 동력이라기보다는 외부의 정치적 변화가 배경이 된 것이다.
스페인 제국이 무너지면서 정치적 위기가 찾아왔고 라틴아메리카인들은 거대한 토양에 '권력'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누군가 권력을 잡아야 했고 300년간 억압받아왔던 그들이 권력을 쟁취했다.
아르헨티나 역사학자 루이스 알베르토 로메로는 "1810년은 마치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런 뒤 혁명이 일어났다"라며 식민지 독립이 우연성과 객관적 상황이 맞아떨어지며 시작됐다고 전했다.
300년간의 식민통치 기간은 라틴아메리카가 완전한 독립을 이루는 데 적지 않은 장애물이 됐다. 많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사실상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지배국이었던 스페인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기 때문.
혁명의 지도자들, 독립운동의 선봉에 나선 사람들은 모든 것에 있어 스페인과 거리를 뒀고 칠레를 시작으로 스페인 군대를 패퇴시키며 정체성 회복에 나섰다.
하지만 이들 나라에 독립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었다.
독립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가 가난과 내전, 미국의 개입으로 점철된 시간들을 보냈다. 독재가 만연했고 마약과의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라틴아메리카가 지금의 모습을 찾기 시작한 건 냉전 이후부터다. 지방에서 자치권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선거로 당선된 정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바나 온두라스 정도를 제외하면 현재 라틴아메리카 31개국에서 대중적인 지지로 선출된 정부가 원조로 살아왔다는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내고 있다.
볼리비아는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을 배출했고, 브라질과 멕시코는 세계 무대에서 신흥경제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독립 200주년을 맞은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아르헨티나 역사학자 가브리엘 디 메글리오는 기대에 비춰본다면 실패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과 비교해본다면 다를 것이라면서 "아르헨티나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호주처럼 될 수 있었지만 적어도 (최빈국인) 아이티는 되지 않았다"라고 과거를 되돌아봤다.
독립 200주년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식민통치자로서 라틴아메리카의 독립 200주년을 맞는 스페인은 불편한 입장이다. 과거 식민치하에 있었던 나라들이 지배자 축출을 한 목소리로 기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페인은 독립 200주년을 맞은 올해를 라틴아메리카와 미래 화합의 계기로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이베로아메리카(라틴아메리카) 없이는 스페인을 이해할 수 없다며 스페인이 라틴아메리카와 동떨어진, 배척해야 될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이런 입장에 동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스페인을 여전히 침략자로 간주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기에 당시 독립이 스페인 이주민이었던 크리오요와 스페인인과 원주민의 혼혈인인 메스티소를 위한 것이었을 뿐 라틴아메리카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인디오들을 위한 해방은 아니었다는 지적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멕시코의 작가인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독립은 기본적으로 일부 메스티소와 크리오요를 위한, 크리오요에 의한 것이었다"면서 "독립은 인디오들의 해방으로 인식되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dpa=연합뉴스) edd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