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칼럼] 중미통합체 회의를 다녀와서
신각수 외교통상부 제1차관
2010.05.02 18:31
태평양 건너편의 중미 국가들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하루 이상 가야 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수에즈 운하와 함께 세계 2대 운하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파나마 운하로 유명한 파나마와 영화 '쥬라기 공원'의 무대이자 단위면적당 생물 다양성이 세계적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코스타리카 등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이름조차 낯선 국가들도 있다. 대부분의 중미 국가들은 인구가 1000만명이 안 되는 소규모 국가들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1960년대 초 우리와 수교한 이래 한결같이 우리를 지지하고 협력해 온 전통적 우방이다.
파나마,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온두라스, 니카라과, 벨리즈 등 중미 지역 8개국은 소규모 국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중미권 경제블록으로서 역할을 강화하며 민주주의 발전을 통한 역내 안정을 꾀할 목적으로 1993년 2월 중미통합체제(SICA)를 정식으로 발족했다. SICA 회원국에는 1만2000여명의 우리 국민이 진출해 있고 섬유•봉제 분야에 대한 투자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자원개발, 인프라 건설 등으로 투자 분야를 적극 확대해 나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 민간 차원의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을 제공할 목적으로 중미 8개국의 통합협의체인 SICA와 1996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정례적인 차관급 대화협의체를 구축했다.
올해 제9차 한•SICA 대화협의체는 지난 4월 20일 파나마에서 개최됐다. 2008년도 제8차 회의 개최 이래 2년 만에 열린 이번 회의에는 각국 외교차관 등 수석대표들이 참가해 양 지역 간 교역•투자 증진, 문화교류 강화, 2010년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성공적 개최 지지 등 국제무대에서 협력 강화, 중미 지역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개발협력 확대 등을 논의했다.
SICA 회원국들은 우리 기업 진출 지원을 위한 비자발급 간소화, 우리 국민 보호를 위한 영사협력 강화, G20 서울 정상회의 성공적 개최 지지 등 우리 측 관심사항에 대해 협력의사를 표명했다. 우리 측은 자원개발 및 인프라 건설, 경제발전 경험 전수, 중소기업 전문가 파견 컨설팅, 연수프로그램 지원 등 중미지역 경제사회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일부 국가는 저탄소 녹색성장 분야에서 양자 차원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SICA 회원국의 총 인구는 약 5000만명으로 우리 인구와 비슷한 정도이다. 우리나라와 SICA 8개국 간 교역 규모는 2009년 기준으로 67억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SICA 회원국들은 북미와 남미를 잇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각종 인프라 건설 및 우회 수출기지로서 잠재성을 보유하고 있어 해외 경제 네트워크를 다변화해 나가야 하는 우리에겐 소중한 협력 파트너다. 우리나라가 최근 세계 경제위기를 비교적 짧은 시간에 극복한 배경에는 우리가 대외교역 대상을 과거 선진국 중심에서 역동적인 성장동력을 가진 개도국 쪽으로 적절히 확대, 다변화해 온 것이 주효했다는 점에서 중미 국가들과 협력도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중미 국가들은 한국과 협력 강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불과 수십년 만에 개발협력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의 경험을 공유하기를 원하고 있다. 한•중미 지역 간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도 관심이 높다. 회의 대표들은 중남미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와 한류에 익숙해져 문화적으로 한국을 친근한 이웃으로 느끼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에서 개최된 중남미 문화축제는 우리 국민이 중남미 국가에 대해 느끼는 문화적•정서적 거리를 좁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제3차 한•중남미 고위급 포럼이 이달 말 서울에서 개최된다. 중남미 국가들은 무역•투자, 에너지•자원•인프라 및 개발협력, 녹색성장 분야 장관급 인사 10여명 이상의 참석을 일찌감치 확정하는 등 한국과 협력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번 포럼은 우리 기업인들이 중남미 최고위급 정책 담당자로부터 중남미 지역의 경제 및 에너지•인프라 분야 현황에 대해 직접 설명을 듣고 대화할 수 있는 유익한 장이 되고 있다. 이번 포럼의 성공적 개최로 한•SICA 대화협의체 회의를 통해 논의된 한•중남미 지역 간 협력의 모멘텀이 한층 강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파이낸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