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편지/권태면] 정치 덕에 웃는 코스타리카
2010.05.15 06:31
권태면 주코스타리카 대사
중미의 작은 나라인 코스타리카에 라우라 친치야라는 여자 대통령이 취임했다. 사람들은 친근감에서 성보다는 이름으로 라우라라고 부른다. 코스타리카는 군부 쿠데타가 많았던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민주정부를 100년 이상 유지한 나라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며 한국을 네번이나 방문했던 오스카르 아리아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한국을 가장 많이 예로 드는 국가원수다. 지난해 미주정상회의에서는 중남미 원수들에게 더는 부질없는 이념논쟁을 하지 말고 실용주의로 가자, 수십 년 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한국을 보라고 연설하고 공용차로 한국의 차를 몰고 다니는 지한파 대통령이다.
50세의 라우라는 그 밑에서 부통령을 하다가 대선에 뛰어 들었다. 의원 장관 부통령을 지낸 다채로운 경력, 현 여당의 후보인 점 등 여러 가지로 우세하였지만 추격당하는 입장에서는 늘 불안했다. 물론 코스타리카는 의원과 장관의 40%가 여성으로서 양성평등에서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나라지만 대통령도 탄생할지가 국제적 관심이었다. 여론조사에서 계속 열세에 몰린 야당 후보들은 여성이 과연 정치를 제대로 끌어가겠느냐, 당선되어도 현 대통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꼭두각시 아니겠느냐며 비방전으로 나왔다.
그녀는 쓸데없는 상호비방전은 안하겠고 정책으로만 말하겠다고 대응했다. 인신공격은 성숙한 국민들에게 먹혀들기는커녕 역효과를 가져와 그녀는 2월 7일 선거에서 재투표 조건인 득표율 40%를 넘어 46%로 한 판에 승리를 거뒀다. 국민은 아르헨티나와 칠레에 이어 자기들도 여성 대통령을 갖게 되었다고 환호했다. 무엇을 보고 찍었느냐는 선거 후 여론조사에서 그녀의 훌륭한 성품이었다는 답이 제일 많았다. 특히 상하계급과 빈부격차가 많은 사회에서 중간층과 서민의 지지가 많았다.
필자가 한국의 대사로서 세 번을 찾아가 만난 그녀는 벽에 그림 한 점 없이 책상과 소파 하나만 덜렁 놓여 있는 초라한 선거사무실에서 온갖 사람을 맞았다. 늘 비싸지 않은 수수한 셔츠와 바지 차림에 다소 검은 혼혈이 주는 매력을 풍긴다. 외국 유학과 국제기구 근무로 영어가 유창하고, 부통령 시절 한국의 전자정부 시스템을 도입해야겠는데 정부가 돈이 없다고 답답해하는 지한파다.
상징적으로 여성의 날인 3월 8일에 선관위가 주는 당선증을 받으면서 그녀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라를 운영하겠습니다. 통치란 위에서 누르지 않고 아래로부터 받아 올리는 것, 상대를 꼬집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는 것, 아랫사람에게 구술하는 게 아니라 대화를 하는 것, 주먹이 아니라 펼쳐진 손을 내미는 것, 소수만의 성벽을 쌓는 게 아니라 모든 백성의 집을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동으로 보여준 모습은 멋진 말보다 더 인상적이다. 의회 내 과반수에 5석이 부족한 여당으로서 군소정당 의원 몇 명만 확보해도 될 텐데, 그녀는 패배한 정당의 대표를 일일이 찾아가 국가운영에 협조를 구하고 매일같이 여러 노조를 비롯한 시민단체를 만나 그들의 처지와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차분하게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게 특기인 그녀에 대해 사람들은 진실로 대화가 통하는 지도자라고, 우리가 대통령을 진짜 잘 뽑은 것 같다고 취임 전부터 호감이 대단했다. 외교적으로는 보좌진 서너 명만을 대동하고 인근 5개국 방문해 관계를 다져 놓아 언론은 이를 매력공세(charm offensive) 외교라 불렀다. 한국을 좋아하는 그녀가 언젠가 방한을 하면 이 매력적인 여자 대통령을 서울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