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극작가 이자경씨 ‘멕시코 이민 100년사’ 펴내
[경향신문 2007-02-04 16:46:39]
“메이지 38년(1905) 5월, 1000여명의 한국인은 유카탄주의 에네켄 경작지의 취업을 목적으로 유카탄주에 도착했다. 유카탄 경작지 소유주는 노동자 부족을 해결하고자 세계 각지에서 이주민을 구했지만 그곳 기후가 험악해 이민자가 없었다. 모집이 전연 실패로 돌아갈 무렵 한국인이 평소 강한 모습을 하여 의약도 없이 기후의 변화에 견딜 수 있음을 알고 우리 대륙식민회사와 계획해 그 유입을 시험하기에 이르렀다. …” (일본 외무성 통상국 이민조사보고, 1910)
100여년 전 멕시코 땅을 처음 밟은 한인 이민자들은 하와이 이민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애니깽’으로 더 잘 알려진 선인장류 ‘에네켄’ 재배를 위한 채무노예로 팔려간 이후 멕시코에 정착한 한인 이민자들의 역사를 담은 ‘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에네켄 가시밭의 100년 오딧세이’가 출간돼 나왔다. 저자는 재미 동포 극작가인 이자경씨(62·여).
‘극단 LA’의 고문인 이씨는 함북 회령 출신으로 1998년 이미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를 펴낸 바 있다.
책에는 초기 한인들이 이민 브로커에 속아 멕시코로 가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일본 외무성 문서 내용과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 1000여명의 이름이 수록돼 있다.
멕시코 이민 1세대는 1905년 4월 인천항을 떠나 멕시코 최남단 살리나스 크루즈에 첫 발을 내디뎠으며 에네켄 농장에서 노예나 다름 없는 처참한 생활을 시작한 이후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 멕시코시티, 베라크루즈, 과달라하라 등지에 100여년간 정착해 살았다.
당시 스페인 식민지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멕시코는 유럽계 이민자들에게는 선취권을 주고, 비유럽계는 해충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던 때였다. 1921년에는 300명의 한인 이민자들이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다시 쿠바로 재(再)이민을 가기도 했다.
이씨는 이민사 집필을 위해 1988~2005년 선조의 흔적이 밴 곳을 누비면서 외양은 멕시코인과 다름 없는 한인 후손들을 접촉하며 자료를 모았다. 그는 “자료를 집대성할 때에는 외부와 차단된 고독 속에 자신을 감금하다시피했으며 경제적·정신적으로 극한 상황에서 멕시코 내륙을 여행하면서 얻은 질병을 아직도 갖고 있을 정도”라고 회고했다.
로스앤젤레스에 30년간 거주한 이씨가 멕시코 이민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 그는 “LA는 멕시코 출신 이민자들을 비롯, 라틴계 이민자들이 넘쳐나는 곳”이라며 “자연스럽게 라틴아메리카의 고대 문명과 현대사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이 관심은 캘리포니아주와 인접한 멕시코 한인 이민사로 옮겨갔다”고 밝혔다.
143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300여장의 사진과 수백여 개에 이르는 도표를 첨부했다. 당초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이었던 2005년 나올 예정이었으나 2년가량 늦어졌다.
〈손제민기자 jeje1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