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제초제 피해 ‘베트남 비극’ 우려
[경향신문 2007-02-08 18:39]
남미 에콰도르가 ‘제2의 베트남’이 되고 있다. 이웃 콜롬비아가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를 없애기 위해 공중살포한 제초제가 바람을 타고 국경을 넘어 에콰도르 농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제초제 피해가 베트남의 고엽제 피해 못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코카 재배국인 콜롬비아 정부가 코카 박멸을 위해 제초제의 공중살포에 나선 것은 2000년 12월. 40년 이상 지속된 내전에서 반군인 콜롬비아 혁명군(FARC) 등이 코카를 자금원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콜롬비아 플랜’이라는 이름으로 자금과 군사 지원을 받고 있다. 제초제 살포도 미국이 지원한다. 그러나 에콰도르 농민들이 엉뚱한 피해를 보게 되면서 양국간 제초제 분쟁이 우려되고 있다.
에콰도르 국경 라고아그리오 지역 주민들은 호흡기 질환과 피부염 등을 호소한다. 2002년 공중살포된 제초제를 완전히 뒤집어 쓴 호세 보네(58)는 “하얀 연기가 내려온다고 생각할 찰나 전신을 감싸버렸다”고 말했다. 이후 짙었던 피부색이 연기에 노출됐던 얼굴과 가슴, 팔을 중심으로 하얗게 변해버렸다. 그는 “햇볕에 닿으면 피부가 금방 빨개지고 얼얼하게 아프다”고 말했다.
이웃 주민인 노라 예라(37)는 “3년 전부터 가슴 부위 피부에 발진이 나고 있다’고 밝혔다. 상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밖에서 놀았던 아이들도 살포 직후부터 자주 콜록거리고 “머리가 아프다”며 울곤한다.
농작물 피해도 심각하다. 제초제를 맞은 바나나는 불에 탄 것처럼 검게 타들어갔고, 바나나잎은 얇게 말려들어가버렸다. 옥수수도 열매가 작아졌다.
농민단체 대표인 마리오 실그레는 “많은 농민이 두통이나 발진, 구역질을 겪고 있지만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에 살고 있어 병원에 가기도 힘들다”며 “농작물의 수확량은 떨어지고 가축은 죽어나가는 등 피해가 막심하다”고 호소했다.
수도 키토의 북부열대지역위생연구소는 제초제가 살포된 지역의 식물을 검사한 결과 표준 사용량의 100배가 넘는 양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한 병원 관계자는 “제초제가 직접적인 원인이라 단정할 수 없지만 피부나 위, 자궁 등의 암 발병이나 무뇌아 출산 등도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양국은 2005년 12월 국경지대의 살포중지를 잠정 합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콜롬비아 정부는 국경지대에 코카가 대규모로 재배되고 있다며 약 1만2000ha에 대한 제초제 살포를 재개했다.
에콰도르의 거듭된 살포 중단 요구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는 제초제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게릴라 자금 차단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르코비니시오 병원의 메다르도 산체스 박사는 일본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대로라면 고엽제 피해를 입은 베트남과 똑같은 비극이 벌어질 것”이라며 “미래에 대한 범죄행위”라고 비난했다.
〈박지희기자 viole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