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한인 페루 '아르키파 신도시 건설'…'황무지에 첨단도시' 꿈의 대역사
[중앙일보 2007-02-23 20:48]
지난 10일 이른 아침 페루 제2의 도시 아르키파 다운타운에 소재한 엘 카빌도 호텔 정문.
첨단 하이테크 중심의 신도시 예정지를 현장답사할 하버드 디자인대학원 도시계획학과 학생들과 신도시 건설 주관회사인 ‘리오세코 홀딩스’ 관계자 20여명이 긴장된 마음으로 10여대의 지프에 탑승했다.
해발 7660 피트 고원지대에 위치한 아르키파 시내를 출발, 꼬불꼬불한 산악 도로를 따라 내려간지 2시간 반만에 신도시가 들어설 15마일의 해안가가 펼쳐진다.
신도시 예정부지는 해안가 두곳 해안가에 조금 떨어진 내륙지역 한곳 등 모두 세곳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함께 동행했던 '이웨이 건축사무소' 대표 스티브 김씨는 "캘리포니아의 해변 풍광과 애리조나의 사막지형이 절묘하게 뒤섞인 현장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탄성을 지른다.
총 개발면적 1만 헥타르(3000만평). 송도 경제특구의 두배 일산 신도시와 비슷한 규모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1988년부터 추진하기 시작했지만 페루의 여러가지 정치적 상황으로 한동안 큰 진척을 보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급진전을 이루게 됐죠."
리오세코 홀딩스의 필 홍 대표는 LA에 사는 페루출신 지인을 통해 80년대 후반 페루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페루의 유력 정치인들과 교분을 쌓으면서 신도시 건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홍 대표는 이런 인연을 바탕으로 페루 대통령과 총리를 만나 UN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한 반기문씨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결국 2005년 3월 아르키파 주정부와 8:2 지분배정을 조건으로 프로젝트 공동 개발에 합의했고 같은 해 10월 주정부가 소유하고 있던 지금의 부지를 구입했다.
홍 대표는 이 곳에 하이테크 산업 및 협력업체 서비스업 주거시설 교육 및 연구소 골프코스 병원 휴양시설 등을 유치해 인구 25만~50만명이 거주하는 미래지향적인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복안이다.
"건축학적 관점에선 분명 매력적인 곳이군요. 하지만 신도시 건설 면적이 너무 방대해 전체적인 프로젝트가 완료되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릴 듯 합니다."
신도시 개발의 매스터 플랜을 담당한 이상림 공간그룹 회장의 말이다.
신도시 건설에 관한 페루 중앙정부 및 주정부의 입장은 무엇일까? 지난해 연말까지 아르키파주 집권당의 사무총장을 지냈던 하이메 폰세는 "아르키파는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의 출신 지역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답사팀은 현장 방문에 앞서 9일 주정부 청사에서 관리들의 브리핑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서 카를로스 레이톤 부지사와 호헤 리라 보좌관은 "신도시 건설의 세부사항을 검토하고 지원을 전담할 태스크 포스팀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어 11일 수도 리마로 돌아 와 총리실을 예방한 현장답사팀은 총리 보좌관인 호헤 루이스 카스타네다로부터 "중앙정부는 그동안 낙후됐던 아르키파 등 남부지역의 개발을 최우선 정책목표로 선정해 놓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리오세코 홀딩스측은 금년말이나 내년 초쯤 주정부 차원에서 도로와 전기 수도 등 인프라 공사가 시작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신도시 건설은 인프라 공사의 진척정도에 맞춰 3단계로 나눠 추진할 계획이다.
홍 대표는 "하바드 대학원의 로돌프 마차도 교수가 리조트 건설에 경험이 많은 '불가리' 등 유명 디자인회사에 시범적으로 고급 휴양지 조성을 맡기는 방안을 권고했다. 개발 초기에는 충분히 고려할만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가 몇년 내로 끝날 단기 프로젝트가 아님을 누누히 강조한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아르키파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했습니다. 새로 정권을 인수한 주정부측과 보다 세밀한 정책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잉카문명을 꽃피웠던 '신비의 나라' 페루에서 펼쳐지는 한인들의 도전과 모험.
한인들이 주도하는 이 야심찬 프로젝트가 10~15년 후에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결실을 맺게될 지 동행한 기자의 가슴은 벅차 올랐다.
▶ 프로젝트 참가 한인 대학원생 '3인방'
'미래도시 건설 벌써 흥분'
도시계획 분야의 세계적 석학 로돌프 마차도 교수와 함께 페루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 현장을 찾은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 도시계획학과 학생들은 미국 학생은 물론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그리스, 아르헨티나, 페루 등지 유학생들로 구성된 다국적군이다.
이중에서도 한인 대학원생 ‘3인방’의 활약은 단연 발군이었다.
맏형은 한국에서 유학 온 임재헌(34)씨.
서강대 공대를 졸업하고 뉴욕 소재 미술대학인 프랫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두번째 주인공은 한인 2세 제이슨 김(28)씨다.
풀러턴의 서니힐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캘폴리 포모나에서 역시 건축학을 전공했다.
미국에서 출생한 막내 필립 한(26)씨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다시 USC로 유학 와 건축학과를 마쳤다.
이들은 현장답사 내내 같은 방을 쓰며 아직 황무지 상태인 신도시 부지를 환경친화적인 최첨단 IT 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아이디어를 모았다.
제이슨 김씨는 “15년~20년이 지난 후 내가 구상한 도시계획 아이디어가 현실화될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흥분이 된다”며 “주변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리면서 미래형 신도시 건설의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페루 투자 환경
외국인 투자 개방적, 지하자원 개발 유망
한반도 면적의 6배 크기인 페루에는 남한 인구보다도 훨씬 적은 283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GDP)은 2006년 현재 6400달러.
경제성장률 6~7%에 인플레율 2%대로 거시적인 경제지표는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전체 국민의 47%가 하루 2달러로 생활하는 극빈층으로 분류될 만큼 빈부의 격차가 심한 편이다.
페루주재 한국대사관의 김주택 영사는 “실질적인 GDP는 3000달러선으로 보면 무난하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한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은 이번이 두번째 당선이다.
80년대 중반 재임 시절 무리한 국유화 정책을 강행한 탓에 페루의 인플레율이 1만%에 이르는 등 실패한 대통령으로 몰려 낙선했으나 20여년만에 권좌에 복귀한 지금은 친 시장경제 정책을 펼쳐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한국의 코트라 페루 사무소가 2003년에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페루는 현재 세계은행의 다국간 투자보장기구인 MIGA에 가입하고 있고, 외국인 투자에 있어서도 거의 자유경쟁체제에 의한 개방정책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들이 페루에 투자하는데는 특별한 문제점이 없다는 게 코트라측의 진단이다.
페루는 동, 아연, 금, 은 등의 매장량이 풍부하기 때문에 이들 지하자원에 대한 개발 및 시설 투자가 유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의 정부 투자기관인 광업진흥공사는 구리 등 페루의 무궁무진한 지하자원을 겨냥해 적극적인 투자에 돌입했다.
또 비교적 양질의 노동력을 가지고 있으며 임금이 저렴해 사양산업 시설을 이전, 북미 및 인근 중남미 수출기지로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만 하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한국 대기업들의 페루 진출도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삼성, LG와 같은 한국 기업들의 페루내 기업활동을 포함해 한국과 페루와의 무역 거래양은 최근 10억달러로 급증했다.
노세희 기자 rshe@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