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는 지구촌 신흥 콜센터
[조선일보 2007-04-18 02:37:40]
영어·스페인어 할 수 있는 사람 많아… 다국적기업서 줄줄이 콜센터 세워 北美와 시차도 인도보다 작아 매력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시티 외곽에 자리 잡은 특별경제구역. 짙은 녹지 사이사이로 보이는 4개 건물마다 파란색 ‘Dell’ 영문 상호가 선명하다. 세계적인 퍼스널컴퓨터(PC) 제조업체인 델의 콜서비스센터다. 건물 안에 들어가 보니 유리 부스에 줄지어 앉은 안내원들의 입에서는 “알로, 코모 에스타(안녕하세요·스페인어)” “헬로, 메이 아이 헬프 유(무얼 도와드릴까요·영어)”가 번갈아 나온다. 전화선 건너편의 손님이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대답도 달라진다.
이곳 마케팅담당 매니저인 메르세데스 모리스(Moris)씨는 “2003년 500명의 직원으로 문을 열었는데 4년 만에 8시간씩 3교대로 일하는 직원이 2000명으로 늘어났다”며 “델이 보유한 전 세계 25개 콜센터 중 신생 파나마센터의 실적이 최상급”이라고 말했다. 델은 엘 살바도르에도 1300명이 일하는 콜센터를 두고 있다.
코스타리카의 산호세에는 휴렛패커드(HP)의 콜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작년 초 300명이던 직원이 연말 3600명으로 급성장했다. “올해 중반엔 6000명까지 늘 걸로 봅니다.” HP의 루이 다 코스타(Costa) 중남미본부장의 예상이다.
중남미가 글로벌 기업들의 새로운 콜센터 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시장 조사기관인 ‘데이터모니터’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남미지역의 콜센터 사업부문 성장률은 연 18.4%다.
지금까지 다국적 기업들의 콜센터 기지로 각광받던 인도를 바짝 추격하는 양상이다. 덕분에 이 지역을 상대로 한 통신장비 회사들도 신이 났다. 남미 콜센터 시장의 32.8%를 차지하는 미국의 사무실 전화장비 제조업체인 아야야(Ayaya)는 매출이 작년 한 해만 54% 증가했다.
남미가 콜센터의 신천지로 떠오르고 있는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착용한다.
무엇보다 영어와 스페인어가 동시에 가능한 인력이 풍부하다는 것. 최근 영미권의 히스패닉 인구가 늘면서 스페인어를 쓰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 수요가 덩달아 늘어나는 추세와 맞아떨어졌다. 델 파나마센터의 모리스 매니저는 “이곳의 최대 장점은 바이링구얼(bilingual·두 가지 언어가 가능)”이라며 “스페인어를 쓰는 남미는 물론 히스패닉이 늘고 있는 북미까지 고객이 선호하는 언어에 따라 맞춰 상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인도에 비해 북미지역과 시차가 작다는 점도 장점이다. 인도 뭄바이와 뉴델리는 미국 동부표준시보다 10시간 반 앞선 반면 중남미의 웬만한 도시들은 북미 도시들과 시차가 1~3시간 이내다. 게다가 최근 중남미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통신 기반을 확충하는 등 인프라를 개선하면서 사업 환경도 좋아지고 있다.
델은 파나마에 콜센터를 열기 전 40가지 이상의 비교 항목을 만들어 여러 나라와 비교한 결과 양질의 노동력과 인프라, 정치·경제 안정도 등 종합 점수에서 파나마가 최고였다고 밝혔다. 코스타리카, 우루과이, 도미니카공화국 같은 곳도 인기 지역이다.
미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콜센터 인력 수요가 늘면서 중남미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영어 학습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의 경우에는 영어와 스페인어을 함께 가르치는 학원들이 인기다. 상파울루 시내 외국어 학원인 ‘마인’의 주임강사인 나타샤(Natasha·38)씨는 “수강생 중에 영어와 스페인어를 같이 배우려는 이들이 절반 가까이 된다”면서 “상대적으로 보수가 좋은 글로벌 기업에 취업하려는 젊은이들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파나마시티·산호세·상파울루=전병근 특파원 bkj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