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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FTA, 대안이 없다고? (9.11)
관리자 | 2007-09-12 |    조회수 : 1148
 얼마 전 ‘SBS 스페셜’로 방영된 ‘맨발의 의사들’이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았다. 전 세계를 누비며 의료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쿠바의 젊은 의사들을 담은 영상물이다. 학비는 전액 무료에다 재학 중 생활비, 교재비까지 무료로 지급받는 쿠바의 라틴아메리카 의대를 졸업한 젊은이들 이야기다. 입학생은 단지 쿠바뿐만 아니라 중남미는 물론 심지어 미국에서까지 찾아온다고 한다. 의술이 입신과 치부, 계층 상승의 수단으로 치부되는 우리 현실에 낯익은 나에게, 대학을 마치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배운 바를 모두를 위해 조그마한 쓰임이라도 될까 고민하는 이들의 모습은 차라리 충격이었다. 이들의 의술이 미치는 범위는 가히 세계적이다. 중남미는 말할 것도 없고 동티모르,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등 참으로 의료봉사의 ‘세계화’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 남미 3국간 통상협정 PTA -

 그런데 그중 특히 나의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에콰도르 출신의 한 촌부가 베네수엘라 안과병원에 백내장 수술을 받으러 왔다. 수술비가 600달러쯤인데 그 돈이 없어 실명의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에서 수술비뿐만 아니라 항공료와 체재비까지 부담한다는 말을 듣고 베네수엘라의 안과병원에서 쿠바 의사들에게 시술을 받고 완쾌된다. 이 모든 것은 차베스 정부의 ‘바리오 아덴트로’라는 공공의료 프로그램으로 인해 가능하다. 차베스 정부의 바리오 아덴트로 프로그램은 빈민에 대한 무상 의료지원 시스템을 말한다. 두루 아는 것처럼 베네수엘라는 매장량으로는 세계 최대의 산유 국가이다. 그러나 중동 등지 대부분의 산유국이 그런 것처럼 베네수엘라 역시 풍부한 천연자원에도 불구하고, 첨예한 빈부격차에 시달려온 나라이다. 이를 가리켜 ‘석유의 저주’라고 부른다. 그러나 차베스 집권 이후 석유자원에 대한 국유화가 단행되었고, 차베스는 석유를 지렛대로 새로운 질서를 실험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새로운 통상협정이다. 2006년 4월 베네수엘라, 쿠바 그리고 볼리비아 3국은 미국이 주도한 전 미주 자유무역협정(FTAA)에 대한 대안적 프로그램으로 이른바 민중무역협정(People’s Trade Agreement)을 체결했다. 이는 차베스가 주도한 ALBA 곧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의 일환이다. FTA와 마찬가지, PTA 역시 체약국간의 관세 및 비관세장벽의 철폐가 목표이다. 그런데 왜 관세와 비관세장벽을 철폐해야 하나라는 질문에서 보면 FTA와 PTA는 하늘과 땅이다. FTA 체제는 기본적으로 경제 강국, 시장 강자의 질서와 경제체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의도한다. 하지만 라틴 아메리카 3국의 새로운 통상 실험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발상에서 출발한다. 예컨대 새로운 통상협정의 결과 베네수엘라는 매일 9만배럴, 연 20억달러 상당의 석유를 제공하고, 이에 상응해 쿠바는 1만4000명의 의료진을 베네수엘라에 파견한다. 경우에 따라 쿠바는 설탕이나 바나나와 같은 농산품으로 상환할 수도 있다.

- 의료·석유 교환 ‘진짜 자유무역’ -
 
 쿠바의 의료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다. 반면 베네수엘라는 소외계층에 대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할 의사가 절대 부족했다. 두 나라가 석유와 의료 서비스를 맞바꿈으로써 두 나라는 고전적 비교우위에 입각한 제대로 된 ‘자유무역’을 실현하는 것이다. 자국민에게 양질의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인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석유 외교는 석유를 무기로 낡은 기득권 질서를 강화하고 국제적으로 자원빈국에 막대한 불이익을 주는 것과는 질을 달리 한다.

 FTA를 통해서만 자유무역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실 지금의 FTA체제는 자유무역을 가장해 사회적, 경제적 약자에게 고통만을 안겨다주는 그런 협정은 차라리 부자유의, 불공정 협정일 뿐이다. 자유무역은 이른바 ‘대세’일 수 있다. 그러나 자유무역이 FTA를 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은 전혀 옳지 않다. 한·미 FTA 비준동의안 제출과 이에 맞선 국정조사 요구를 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경향닷컴〈이혜영 한신대교수 국제관계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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