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 7년만에 칠레서 강제 송환… 구치소 수감
인권 유린과 부패 혐의로 권좌에서 쫓겨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69·사진)이 페루에서 쫓겨난 지 7년 만에 국내 법정에 서게 됐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칠레 대법원은 “페루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후지모리 전 대통령을 페루로 강제송환하기로 결정했다”고 21일 발표했다. 대법원은 25명이 희생된 두 차례의 학살사건과 공금 유용, 불법 도청, 정부 예산 유용 등 페루 검찰이 제시한 범죄 혐의 7건을 대부분 인정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22일 페루 경찰에 넘겨져 항공편으로 수도 리마 인근 라스 팔마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뒤 특수경찰 산하 구치소로 이송됐다.
일본계 2세로 1990년 대통령에 올라 두 차례 연임하며 승승장구하던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2000년 11월 권좌에서 물러났다. 당시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정보부장이 야당 정치인을 매수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은 정권 붕괴의 결정타가 됐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일본에서 머물다 정치적 재기를 노리며 2005년 11월 칠레로 입국했으나 가택연금됐다. 지난 7월에는 일본 참의원 선거에 국민신당 비례대표로 출마해 낙선하기도 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학살 혐의로 최장 3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페루 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AFP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나 페루 내에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만만치 않아 후폭풍이 예상된다. 딸 게이코 후지모리가 지난해 총선에서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될 정도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인기는 아직 높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21일 칠레TV와의 인터뷰에서 “2011년 대선에서 또 한 명의 후지모리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딸의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페루 유력인사들의 불미스런 행동을 담고 있는 비디오를 보관하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0년 부정부패 혐의로 몰려 출국할 때 몬테시노스 정보부장이 넘겨준 여행 가방 4개분의 비디오에 정치인, 법관, 기업인 등 유력인사들의 성매매, 마약 복용 장면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페루 진실과화해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카를로스 타피아는 “후지모리가 재판 과정에서 압력을 가하기 위해 숨겨둔 비디오를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연 기자 byabl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