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음악칼럼니스트·정신과 의사
▲ 박종호 음악칼럼니스트 최근 미국에서 가장 떠오르고 있는 메이저 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이 교향악단은 2009년 시즌부터 악단을 이끌어 갈 차기 음악 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올해 26세의 베네수엘라 청년인 구스타보 두다멜(Dudamel)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우선 그의 젊은 나이에 놀라기도 했고,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변방 출신이라는 점에 의아해한 분들도 있었다. 그는 이미 세계 유수의 음반 레이블을 통해 몇 장의 레코드를 내놓은 21세기의 주목받는 기대주다.
그가 처음 이름도 생소한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유서 깊은 베를린의 필하모니 홀에서 지휘했을 때, 독일 음악계가 깜짝 놀랐다. 한 사람의 재능 있는 지휘자가 출현했다는 소식에 앞서, 의식 있는 사람들은 멀리 베네수엘라에서 날아온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실력에 더욱 깜짝 놀랐다. 1~2명도 아니고 100명의 젊은이들이 마치 외계인이 지구에 착륙하듯 그렇게 갑자기 유럽 음악계에 등장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의 고향 베네수엘라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베네수엘라의 정치가이자 경제학자이다. 32년 전, 그는 민생 파탄으로 빈곤·마약·범죄 속에 뒹굴고 있는 조국의 소년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브레우는 주차장에 11명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악기를 하나씩 주면서 연습을 하도록 했다. 다음 날엔 25명이 왔고, 그 다음엔 46명, 다음엔 75명이 모였다.
레나르라는 아이는 클라리넷을 받기 전에 강도와 마약 복용으로 아홉 차례나 체포된 적이 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제가 악기를 가지고 달아나지 않을 거라고 믿어주는 것에 우선 놀랐죠. 그들은 저를 억지로 계도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그냥 악기를 주었던 겁니다. 손에 잡은 악기는 총보다 느낌이 좋았습니다.” 레나르는 지금 교사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아브레우가 만든 청소년 오케스트라 지원단은 ‘시스테마’라고 불린다. 시스테마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빌려준다. 레슨도 무료다. 레슨은 그룹으로 이뤄지고, 기초를 터득한 아이들은 더 나이 어린 아이들을 가르친다. 전국 100여 개의 학교에서 아이들은 매주 여섯 차례씩 함께 연습한다. 애정으로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점차 아이들은 유럽의 음대에 입학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 이렇게 해서 거리에 뒹굴던 아이들이 악기를 들고 예술을 알게 됐다. 거리가 깨끗해졌음은 물론이다.
시스테마가 만든 오케스트라는 지금 베네수엘라 전역에 200여 개에 이른다. 감동한 정부는 늦게나마 매년 3000만 달러의 보조를 시작했다. 연평균 소득이 3500달러인 이 나라에서 말이다. 이런 토양에서 14세 때부터 지휘를 시작한 두다멜 같은 청년이 나타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최연소 더블베이스 주자도 배출됐다. 그들은 “오케스트라는 우리들에게 기쁨과 협동, 성공을 향한 희망과 동기 부여를 가르쳐 주었다. 전체 하모니를 향한 노력은 가장 아름다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보고 있으면, 기적을 만들어낸 그들을 우리는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음악적 자원이 풍부하고 음악 전공자가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우리 음악계도 개인의 행복과 영달만을 위한 활동을 넘어서 사회를 향해 손을 뻗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