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코리안 타임’처럼 브라질에는 ‘브라질 타임’이 있었다. 고위 관리와 약속을 하고 가도 30분~1시간씩 사람을 기다리게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요즘 브라질 사람들은 달라지고 있다. 며칠 전 만난 상파울루의 명문 FGV 경제·경영대학의 마르시우 할란지(Holland) 교수도 그랬다. 포르투갈어로 발음하면 올랑지 정도 될 듯한데, 유창한 영어로 ‘할란지’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 그는 아침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나타났다. 브라질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다.
화제는 브라질 경제였다. 1시간 동안의 대화 내내 그의 표정은 밝았다. 브라질 경제의 호황을 ‘미스터리’라고 표현한 그는 그 원인을 다양한 요인으로 설명했다. 수출 호황, 내수 활성화, 금융산업의 성장, 서민층의 소득 증가, 중산층의 부활, 룰라(Lula) 정부의 경제정책, 대외신인도 상승, 브라질 헤알화(貨)의 강세…. 이른 아침에 연구실에서 기자에게 정열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얼굴에서 신바람이 느껴졌다.
브라질은 2004년만 해도 세계경제 순위에서 한국보다 3단계 아래인 14위였다(IMF 기준). 하지만 지난해 한국이 11위에서 12위로 내려앉은 반면, 브라질은 한국을 제치고 10위(국내총생산 1조677억달러)로 부상했다. 브라질 사람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FGV대학 앞에서 만난 대학생 A씨는 “계속 성장하고 있는 브라질 경제가 한국을 제친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다. 대학생 B씨는 “한국이 잘사는 나라이긴 하지만, 우리는 미국과 중국을 향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30대 직장 여성은 “LG·삼성을 좋아해요”라면서도 “브라질이 한국을 계속 앞서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브라질인들이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국토와 인구가 남미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덩치가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의 순풍을 타고 거침없이 항해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선장인 룰라 대통령의 적절한 경제정책은 암초를 피하고 안전한 길로 브라질호(號)를 인도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니 시장에 돈이 넘치고, 넘친 돈이 부유층에서 저소득층으로 흘러 중산층이 생겨난다. 브라질의 대표적인 저가시장인 ‘3월 25일 거리’의 가게들은 물건이 없어서 팔지 못할 지경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 시골 농촌과 빈민층 지역에서도 저소득층들이 개당 2~5달러짜리 액세서리를 사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던 ‘사치품’이었지만 지금은 ‘생필품’이 되어간다고 시장상인들은 말했다.
브라질은 올해 한국(4.8%)과 비슷하게 4.5% 성장할 전망이다. 그러나 브라질 국민들은 7~10%씩 성장하는 중국, 아르헨티나, 칠레와 견주며 정부를 닦달한다. 지금도 괜찮지만, 더 박차를 가해 성장률을 갑절로 높이겠다는 열망으로 가득하다.
애덤 스미스(Smith)는 주저 ‘국부론’에서 한 나라의 국민이 가장 행복하게 느낄 때는 그 나라의 국부(國富)가 증진될 때라고 썼다. 부모 때보다 자신이 더 잘살게 되고, 자신의 주머니에 돈이 생겨 자식들을 더 잘 먹이고 입히며 교육시킬 때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할란지 교수는 브라질 사람들의 행복 비결에 대해 “정치는 좀 시끄럽지만 일반 서민들은 정치를 잘 모른다”며 “경제가 좋으니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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