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의 유혹
외국 기업들 브라질로 브라질로
작년 직접투자 전년보다 배 늘어
인구 2억 시장… 노동 인력 숙련도 높아
인접한 남미국가 진출이 쉽다는 매력도
작년 사상최대 374억달러 직접투자 유치
철강사 진출 잇따라… 바이오에탄올도 각광
2008.01.25 21:57
요즘 브라질에서는 거의 매일 외국 기업이 투자를 한다는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세계 2위 광산업체인 영국의 앵글로아메리칸(Anglo American)은 지난 17일 브라질 광산 회사 MMX로부터 철광석 광산 2곳의 운영권을 55억달러(약 5조2500억원)에 사들일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이틀 전인 15일에는 미국의 반도체칩 제조 회사 시메트릭스가 10억 달러(9500억원)를 투자해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등 3곳에 스마트카드칩 생산 라인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마트카드칩은 손톱만한 크기에 중앙전산장치(CPU)•메모리 등 다양한 기능을 넣은 반도체칩이다.
브라질이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블랙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브라질은 사상 최대 규모인 374억달러(35조7000억원)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했다. 이는 2006년보다 99.3%가 증가한 것으로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증가세다. 규모 면에서는 중국•홍콩•러시아에 이어 네 번째로 컸다.
브라질의 종전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기록은 지난 2000년의 328억달러였다. 그러나 당시는 국영기업 민영화라는 특수(特需)가 있었다. 반면 지난해 기록은 민영화가 전무(全無)한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2008년에도 외국인 직접투자 증가세가 유지될 것인가? 브라질 정부 경제자문기관인 '다국적기업 및 글로벌 경제연구소(Sobeet)'는 "사상 최대 규모였던 작년보다는 다소 줄어들겠지만 최소 300억달러, 최대 350억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라질에 외국인 직접투자가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투자 기회를 엿보는 엄청난 유동자금을 꼽을 수 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전세계 해외 직접투자가 전년 대비 약 20% 급증한 1조5000억달러(1430조원)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고공 행진도 큰 역할을 했다. 브라질의 광물, 에너지가 투자 대상으로 새삼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광물•에너지 등 1차 산업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가 전년 대비 215% 급증했다. 특히 금속광물 채굴 산업은 증가율이 495%에 달했다.
특히 세계 굴지 철강업체들의 대규모 투자가 줄을 잇고 있다. 세계 최대 철강업체인 아르셀로 미탈(Arcelor Mittal)은 지난해 11월 "앞으로 5년간 브라질에 5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2위 철강업체인 일본의 니혼스틸 역시 브라질 최대 철강제품 생산•공급업체인 우지미나스(Usiminas)에 84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1차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가율은 떨어지지만, 제조업도 외국인 직접투자가 전년 대비 63% 급증했다. 특히 바이오연료 산업이 괄목할 증가세를 보였다.
바이오에탄올 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프랑스•영국•미국•일본•싱가포르•인도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투자 방식은 지분 인수, 합작 사업, 신규 공장 설립, 사모펀드 조성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됐다.
지난해 1월 싱가포르의 노블그룹(Noble Group)이 브라질에서 에탄올 및 설탕 생산을 위해 2억5000만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6월에는 조지 소로스(Soros)가 사모펀드인 아데코(Adeco)를 통해 브라질 에탄올 공장 설립에 10억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그렇다고 지난해 브라질이 거둔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성과를 광물•에너지 자원에 대한 투자 증가로만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 중 1차산업 비중이 1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요인을 다른 곳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전 세계 다국적 기업 5000여 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외국인 직접투자 매력도 설문 조사 결과가 그 답이 될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 기업의 29%가 '탄탄한 기초경제 여건을 바탕으로 한 브라질 경제의 성장성(역동성)'을 가장 큰 투자 동기로 꼽았다.
그다음으로 전체 응답 업체의 24%가 브라질 내수시장의 규모를 지목했다. 브라질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면서 인구 2억 명의 거대 소비시장(2007년 GDP 규모 1조2803억달러)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다른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와 비교할 때 브라질은 천연자원이 풍부하다는 점 외에도 노동 인력의 숙련도가 높고, 인접한 다른 남미 시장 진출이 용이하다는 매력이 있다.
브라질은 포화 상태에 이른 인도를 대체할 새로운 IT서비스 수출 센터로도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회사인 AT커니의 글로벌 IT서비스센터 매력도 평가에서 브라질은 인도•중국 등에 이어 5번째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지난해 액센추어(Accenture)가 영국•미국•독일 등 8개국 최고경영자 4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브라질은 중국•미국•인도에 이어 4번째로 제조업 부문에서 M&A 투자 매력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그렇다면 이 같은 외국인 직접투자의 호황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현재로서는 긍정적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브라질 경제가 당분간 세계 경제의 평균 성장률을 웃도는 안정적 성장세를 지속할 전망인데다, 브라질이 보유한 천연자원 개발에 대한 해외의 높은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경제분석기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는 앞으로 3년간(2008~2010년) 브라질 경제가 세계 경제성장률 3.3%를 상회하는 4.2% 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브라질 정부가 경제성장촉진계획(PAC)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2366억달러 규모 인프라 구축 사업이 올해부터 본격화하면서 이 분야에서도 막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기회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시장에서 예상하는 것처럼 올해 국가신용등급이 투자적격 등급으로 상향 조정될 경우 브라질 경제의 최대 호재가 될 것이며,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 경기 변동에 대한 내성(耐性)이 생겼다는 점도 예전과 달라진 모습이다. 이코노미스트 1월 19일자는 "브라질 경제가 미국 의존형에서 벗어나 전 세계 시장으로 편입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외국인 직접투자 대상지로 브라질의 약점도 적지 않다. 유엔무역개발회의는 브라질이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로 법적•제도적 불안정성을 지적했다.
세계은행도 브라질의 외국인 투자환경이 아직 개선될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이 세계 각국의 사업 환경을 종합적으로 조사해 매년 발표하는 '비즈니스 수월성 평가(Doing Business 2007)'에서 브라질은 '사업하기 어려운 국가'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난해 순위는 122위로 브릭스 국가 중에서 가장 낮았으며, 중남미 주요 경쟁국인 칠레•멕시코•아르헨티나에도 뒤졌다.
일례로 브라질에서 법인을 설립하려면 18번의 절차를 거쳐 총 152일이 소요된다. 이는 OECD국가 평균(14.9일)보다 10배나 길다. 또한 브라질에서는 인허가 취득에 평균 411일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나 OECD 평균을 크게 상회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브라질에 투자한 기업인의 말을 인용해 "브라질에 투자 진출을 희망하는 외국 기업에게 아직도 높은 장벽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권기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
조선일보 김승범 산업부 기자 sb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