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진공청소기가 중남미 지역에서 인기가 높은 편이지만 유독 칠레에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산 진공청소기의 칠레 시장 점유율은 2004년 16.3%에서 지난해 3.1%로 뚝 떨어졌다. 반면 중국산 진공청소기의 시장 점유율은 같은 기간 18.9%에서 25.3%로 높아졌다.
중국산의 원가는 한국산보다 낮다. 하지만 한국이 가장 먼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을 정도로 공을 들인 국가가 칠레라는 점을 감안하면 힘이 빠진다.
해답의 실마리는 FTA 체결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 각각 칠레와 FTA를 맺고 있다. 한-칠레 FTA 협상은 2002년 10월 타결됐지만 2004년 4월 발효됐다. 한국은 농민들의 반대와 이를 의식한 정치권의 비준 거부로 1년 6개월을 허비했다. 반면 중국은 칠레와의 FTA 협상을 2005년 10월 타결해 일사천리로 2006년 7월 발효시켰다. 또 한국산 진공청소기 관세는 현재 3.8%로 2014년이 돼야 0%가 되지만, 중국산 진공청소기는 FTA 발효 즉시 관세가 없어져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다.
한국은 일찌감치 칠레에 ‘러브 콜’을 보냈지만 FTA 비준을 미적거리고 과감하게 개방하지 못했던 탓에 중국에 칠레의 가전시장 일부를 빼앗긴 셈이다.
기업인들은 지난해 4월 타결된 한미 FTA를 두고 비슷한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한미 FTA는 4월 총선 정국에 휘말려 국회에 비준동의안이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부도 11월 대선을 앞두고 의회 눈치를 보면서 비준을 미루고 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이희범 무협회장은 “한미 양국이 애지중지 타결시킨 FTA가 명분 없는 이유로 파묻히고 있다”며 “조만간 국회에 쳐들어갈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실제로 다른 경제단체장들과 함께 국회를 찾아 한미 FTA 비준을 촉구했다. 경제단체들은 한미 FTA 비준을 촉구하는 10만 명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경영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은 군침 도는 시장인 동시에 투자 유치 대상국이기도 하다.
한 대기업 임원은 “미국에서 ‘칠레 청소기의 굴욕’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 김유영 산업부 abc@donga.com